[연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소설] 구엄리 옛이야기-11화

by김양훈

겨울 해변


해를 넘긴 1월의 겨울 바다는 사나웠다. 세찬 바람이 몇 날 며칠 그치지 않고 불었다. 파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와 검은 바위에 새하얗게 부서졌다. 하얀 물보라가 쉴 새 없이 하늘 높이 날았다. 거친 바람에 흩날린 물보라가 안개비처럼 마을을 적셨다. 나무라곤 하나 없는 마을 거리는 밭의 경계를 가르는 밭담과 잔돌을 걷어내 쌓은 잣담, 그리고 집집으로 이어진 올레담과 울담만이 황량했다. 마을 온 천지는 돌담과 돌담으로 이어진 검은 돌 세상 같았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숭숭 뚫린 돌구멍을 쌩쌩 지나갔다. 칠흑 같은 밤, 바닷바람이 몰아치기라도 하면 시커먼 돌담은 온갖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가 바라보는 우영팟에는 철 모르고 일찍 핀 장다리와 갯무꽃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바람 부는 추운 한낮인데도 아이들은 햇볕 드는 보리밭 돌담 구석에 모여서 연싸움에 바빴다. 푸릇하게 돋아난 어린 보리싹들이 뛰노는 아이들에 밟혔다.

석출은 하릴없이 바다로 나갔다. 그는 바람에 맞서기라도 하려는 듯 모진개 기정의 끝머리 방지석에 걸터앉아 부서지는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석례가 그리운 것이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었으면 이 무료한 겨울이 한층 견디기 쉬웠으리라’라는 생각을 했다. 심사가 헛헛한 것이다. 팽이도 만들어 주고 방패연도 같이 날리면 세상 즐거울 것만 같았다. 남의 손주를 껴안아 올리며 보라는 듯이 눈치를 주는 어머니 모습도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바싹 마른 어욱새가 바닷바람에 마구 흔들렸다.

모진개 서편으로 고갯마루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로길은 애월포구까지 꼬불꼬불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가파른 기정이 솟아있는 태역밭을 '모진개'라 불렀다. 밤이 되면 인적이 끊기고 바람만 부는 곳이다. 나무라곤 거친 바닷바람에 등골이 휘어진 소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다. 소나무들은 할락산을 향해 뭔 소원이라 빌듯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있었다. 바다에서 높게 곧추선 절벽을 '몰(馬) 털어진 기정'이라 불렀다. 동네 좀녀(潛女)들이 이 기정 아래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가 말 두개골을 보고 놀라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절벽 끝에 서서 눈 아래로 보면 아찔할 정도로 높다. 이곳은 어스름이 오면 괴괴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다. 해 질 녘부터 곧 인적이 끊겼다. 그런 까닭으로 정분난 동네 남녀가 한밤 몰래 붙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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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작가, 칼럼니스트, 늦깎이 화가, 야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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