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긴 메시지를 받았다. 운전하는 동안 휴대폰이 세 번 울렸다. 빨간불로 신호가 바뀌자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대충 훑어보던 눈이 한 단어에서 멈췄다.
Honestly.
한참 그 단어를 바라봤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숨을 한 번 고른 뒤, 신호가 바뀌자 다시 액셀을 밟았다.
아, 또 왜 이러지. 왜 자꾸 선을 넘지?
쿵쾅거리던 심장이 머리까지 올라와 지끈거렸다.
지난번 글에서 온라인 게임동료와 선을 긋는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나는 온라인 게임동료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일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나와 온라인 게임 동기다.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온라인 게임동료라는 선 안에 두고 싶었다. 다른 동료와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카피라이터인 그와는 잡지 일을 하면서 계속 의견을 주고받아야 했고,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잠시 오갔다. 반면 그녀와는 업무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차이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다른 동료와 조금 더 가까이 지내는 것을 그녀가 신경 쓰고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요즘 나는 회사에 가면 굿모닝 인사를 하고, 퇴근할 때 굿바이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그 사이에는 일 이야기만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에 생각이 많았다. 머릿속이 복잡한 날에는 말수가 줄었고, 해결되지 않은 생각을 안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혼자 있는 편이 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디오 에디터인 그녀가 내게 물었다.
“수, 너와 나 사이에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우리 사이 괜찮은 거지?”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녀가 서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수가 적어진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생각이 많았고, 특별히 너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금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그녀는 또 물었다.
우리 사이 괜찮은 거지?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받다 보니 나도 지치기 시작했다.
왜 나는 계속 내 상태를 설명해야 하지?
내가 왜 그녀에게 이런 것까지 이해시켜야 하는 걸까.
그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오늘 또 긴 메시지가 왔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바라봤다.
Honestly.
정직하게.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내가 여러 번 이야기한 건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요즘 어떤 상태인지, 왜 말수가 줄었는지, 너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미 이야기했다.
그런데 무엇을 더 정직하게 말하라는 걸까. 내가 지금보다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설명해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말해야 충분한 걸까.
당장 답장을 보내고 싶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왜 이런 메시지를 보내냐고,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냐고, 화가 난 그대로 길게 답장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조금 기다렸다.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마음을 이해시키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짧게 답했다.
메시지는 퇴근 후에 받았지만 답장은 밤이 되어서야 보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보내자마자 하트 하나를 보냈다. 나는 그 하트를 한참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화가 났는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왜 자꾸 확인하려 했을까. 왜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까.
그러다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을 것이다.
상대가 지치고 바쁜 줄 알면서도 내 마음이 서운하다는 이유로 자꾸 확인하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때는 내 마음만 보였다.
그 사람이 얼마나 지쳤는지, 내가 건넨 말들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남았는지는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때의 나도, 상대에게는 답을 계속 요구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보면서 알았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런 사람이었을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