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명탐정

사건 일지 2장(1)

by김균탁commune
제6화 그림.png

육사가 떠난 후, 해경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육사가 내민 종이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궁금했지만, 쉽게 종이를 펼칠 수가 없었다.


복덩이는 그런 해경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탐정이 되기로 마음 먹었으니, 육사가 건낸 종이를 펼쳐보기는 해야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해경은 옆에 서 있는 복덩이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복덩이의 옷은 누더기에 가까웠다. 돈을 달라고 하면 선뜻 돈을 쥐여줄 만큼 꾀죄죄했다.


해경은 육사가 남기고 간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복덩이를 보며 말했다.


“복덩아.”


“네? 아저씨?”


“너 그 모습으로 내 조수를 할 수 있겠냐? 일단 옷 한 벌 사러 가자.”


“옷이요? 저는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다. 이 김해경의 조수가 이렇게 꾀죄죄해서야 되겠냐. 최소한 내 반이라도 따라와야지.”


“이 옷이 어디가 어때……,”


복덩이는 말을 하려다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해경의 말대로 정말 여기저기 찢어진 누더기였다.


해경은 자신의 모습을 위아래로 보고 있는 복덩이의 손을 잡고 끽다점(카페)을 나왔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했다. 해경은 복덩이를 바라보았다.


해경과 눈이 마주친 복덩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일본 헌병과 경찰들이 사람들을 막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 복덩이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일본 헌병들의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


복덩이가 본 것은 처참한 풍경이었다. 건물 외벽은 모조리 내려앉아 있었다.


유리창이 깨진 파편은 길거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경찰들의 손에 의해 하얀 천을 뒤집어 쓴 몇몇이 트럭에 실려나갔다.


그 모습을 본 복덩이는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제일 뒤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게 무슨 일이래요?”


“꼬마는 몰라도 된다.”


“에이! 그런게 어디 있어요. 조선에서 일어난 일인데 조선 사람은 다 알아야죠.”


“거 참! 당돌한 녀석이구만. 조금 전에 이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그래서 이 난리야.”


그 말을 들은 복덩이는 재빨리 해경에게로 뛰어갔다.


“아저씨 폭탄이 터졌다는 데요.”


“폭탄? 가만 있어보자 저기 뭐가 있더라.”


해경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 무슨 건물이 있었는 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 그래 저기 앞에 경찰서가 있구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의 폭탄 투척은 주로 세 군데에 집중되었다.


관공서, 경찰서, 은행이었다. 이 세 곳은 모두 조선인들을 착취하는 곳이었다. 일본인들은 테러라고 불렀지만, 조선인들에게는 의로운 행동이었다.


죽음을 무릅 쓰고라도,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독립에 대한 의지였다.


그때 해경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육사 형님. 형님인가?’


해경은 재빨리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복덩이가 물어봤던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콜록, 콜록, 콜록.”


갑자기 뛰어서 그런지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해경에게 어깨를 잡힌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뭐요?”


“아! 저, 그게 아니라. 범인. 범인은 잡혔습니까?”


“저기 보시오. 지금 포승줄에 묶여서 끌려가고 있지 않소.”


해경은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용수를 쓰고 있었지만, 키와 덩치로 봐서는 육사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축 늘어진 채 일본 경찰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그 사람의 옷은 피범벅이 되어 옷 밖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해경은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음이 썩 편한 것은 아니었다.


끌려가는 사람도 조선인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테러범으로 낙인 찍혀 재판을 받을 것이 뻔했다. 아마 그 재판은 졸속으로 사형을 내릴 것이었다.


의로운 조선인 한 명이 또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것, 그 슬픔에 해경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해경의 가슴이 쿵쾅쿵쾅 소리가 날 정도로 뛰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일본인에 대한 분노가 가슴을 타고 올라 목적을 때렸다.


“콜록, 켁켁켁.”


그러자 기침이 더 심하게 나왔다. 해경은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 나와 복덩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복덩아! 일단 가자. 먼저 옷이나 사야하지 않겠냐?”


“지금 옷이 중요해요.”


“그래 옷이 중요하다. 이 녀석아!”


해경은 복덩이와 양품점(옷가게)으로 갔다. 그리고 복덩이에게 꼭 맞는 옷을 하나 사주었다.


깔끔한 옷을 입은 복덩이의 모습은 한결 더 좋아보였다. 그래도 해경의 눈에는 무엇인가 부족해 보였다.


해경은 옆에 있는 모자를 들어 복덩이의 머리 위에 씌웠다.


“됐다. 이제 진짜 조수 같은 모습이 됐구나.”


복덩이는 이런 옷과 모자는 처음 입어보는 듯 거울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해경의 입가에도 흐뭇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신기한 듯 계속 거울을 보고 있는 복덩이를 향해 해경이 말했다.


“가자.”


“네. 아저씨. 감사합니다.”


새옷을 입은 복덩이는 엄청 신이 난 것 같았다.


끽다점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폭발 사고의 현장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 정리가 덜 끝난 모양이었다.


끽다점으로 돌아온 해경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복덩이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와야 한다.”


“네!”


방 안으로 들어온 해경은 외투를 벽에 걸쳐두고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반듯한 자세로 바카라상 앞에 앉았다.


종이를 펼쳐본 해경은 또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수께끼 같은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경은 종이에 적힌 글자를 몇 번이나 읽어 보았다.


1

이른 아츰 골목길을 미나리 장사 기-ㄹ게 외우고 갑니다,

할머니의 흐린 동자는 창공에 무엇을 달리시난지,

아마도 X에 간 맏아들의 입맛(미각)을 그려나 보나 봐요.


2

시냇가 버드나무 이따금 흐느적거립니다.

표모의 방망이 소린 왜 저리 모날까요,

쨍쨍한 이 볕실에 누덱이만 빨기는 짜증이 난 게죠.


3

삘딩의 피뢰침에 아즈랑이 걸려서 헐떡거립니다.

돌아온 제비 떼 포사선을 그리며 날너 재재거리는 건,

깃들인 옛 집터를 찾아 못 찾는 괴롬 같구료.


글을 읽은 해경은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비밀 유지가 중요하다 해도 이건 너무한 일이었다.


이걸 또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해경은 하얗고 긴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각각 떨어진 세 개의 연.


우선 문제는 이 세 개의 연이 각각 다른 단서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단서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해경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도저히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해경은 종이를 벽에 붙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끽다점으로 온 복덩이가 해경을 불렀다.


“아저씨, 해경 아저씨. 저 왔어요.”


복덩이가 아무리 불러도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때 금홍이가 복덩이 뒤로 와 말했다.


“아마 잘 거야. 오후나 되어서야 일어나는 사람이니…….”


금홍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깔끔하게 머리를 빗고, 양복을 입은 해경이 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머! 당신 원래 이 시간에 안 일어나잖아요.”


“이제 생활을 조금 바꿔 볼려고. 매일 게으름 피울 수는 없잖아.”


“나참!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더니. 나 두고 죽으면 안 돼요.”


“걱정 말어. 쉽게는 안 죽을 거니까.”


해경은 밖으로 나와 끽다점 의자에 앉았다.


“금홍이 여기 가베(커피) 한 잔이랑, 설탕 넣은 타락(우유) 한 잔 줘.”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금홍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복덩이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속삭였다.


“우리 오늘 뭐 해요?”


“글쎄다. 뭘 해야 할까? 일단 단서를 찾아야 겠지.”


“육사 아저씨가 준 종이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 데요?”


“네가 본다고 아냐?”


“저도 한글 정도는 읽을 수 있다고요. 육사 아저씨가 가르쳐 줬거든요.”


“그래 대단하다. 이 녀석아! 그래도 위험하니까 널 보여줄 수는 없고. 가베랑 타락이나 한 잔 마시고 단서를 찾으러 가보자 꾸나.”


“쳇! 나도 보여주지.”


그때 금홍이 가베와 타락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금홍이! 나 이거 다 마시고 나갔다 올테니까. 기다리지는 말어.”


“알았어요. 끽다점은 제가 잘 지키고 있을 게요.”


“고마워. 금홍이만 믿을게.”


“흥! 늦게나 들어오지 마요.”


가베를 다 마신 해경은 복덩이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처없이 길을 떠돌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번에도 단서를 찾기 위해 고생을 했으니까.

해경은 육사가 준 쪽지의 첫 연을 곱씹어 보았다. 마지막 행에 있는 X. 그 X는 무엇을 뜻하는 거란 말인가.

그 X속에 정답이 들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경은 첫 연을 머릿 속에 그리며 길을 걸었다. 해경의 생각에 첫 연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나리는 무엇일까? 아마 맏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 것이었다.


그 음식을 파는 장수가 집 앞을 지나가고 방 안에 있는 할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맏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당연히 밖으로 나가 사야 마땅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할머니는 미나리를 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먼 하늘, 창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왜 할머니는 창공만 바라보는 것일까? 해경은 여기에서 잠시 생각을 멈췄다.


맏아들은 왜 집에 없는 것일까? 흐린 동자는 아마 눈물이 고였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맏아들을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왜 볼 수 없는 걸까? 왜? 왜? 왜?


해경은 거리를 걸으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복덩이는 그런 해경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해경은 전봇대에 부딪힐 뻔도 하고, 전철에 부딪힐 뻔도 했다.


그때마다 복덩이가 해경의 옷을 잡아 당겨 위험에서 구해주었다.


“아저씨. 무슨 생각을 하기에 앞도 안 보고 다녀요?”


복덩이의 말에 해경은 뒤를 돌아보았다. 복덩이는 뾰루퉁한 얼굴로 해경을 째려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육사 형님이 준 쪽지의 실마리를 생각하느라. 딴 생각을 못 했다.”


“그러다가 다쳐요. 다치면 일을 못 하잖아요. 몸도 안 좋으면서. 그리고 그렇게 수상하게 다니면 순경이 잡아가요.”


“이 녀석아. 이렇게 다닌다고 순경이 잡아가냐?”


“미친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잡아갈 수도 있죠. 헤헤.”


“에라이. 이 녀석아. 아주 감옥에 가라고 염불을 외워라.”


복덩이와 이야기를 주고 받던 해경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감옥.’


해경은 X가 뜻하는 글자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아들을 눈물로 그리워하는 것은 볼 수 없기 때문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들은 아주 먼 곳으로 갔다. 아니, 가깝지만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좋아하는 미나리 장수를 그냥 보내고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는 곳. 그곳은 분명 감옥일 것이었다.


X는 옥이라는 글자가 분명한 것 같았다. 옥에 간 맏아들 입맛을 그려보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분명 감옥과 관련이 있는 사건이고, 해경은 그 사건을 풀어야만 할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해경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감옥이라는 무시무시한 곳과 관련이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해경은 무심코 육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 형님인 걸 알기 전에 먼저 한 대 때릴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감옥에서 무엇을 하라는 뜻일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또 그 많은 감옥 중에 어느 감옥을 말하는 것인가?


해경은 또 골치가 아팠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지금까지 한 일이라고는 첫 번째 연에서 하나의 단서만을 찾은 것이 전부였다.


이럴거면 끽다점에서 단서나 찾을 걸 괜히 거리로 나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복덩이가 뒤에서 해경을 불렀다.


“아저씨, 우리 밥 안 먹어요? 배 고파요.”


“그러고 보니 나도 좀 출출하구나. 우리 냉면이나 먹으러 가자.”


“냉면이 뭐예요?”


“냉면 안 먹어 봤냐?”


“뭔지도 몰라요. 저 같이 가난한 아이가 그런 고급 요리를 어떻게 먹어요.”


“이 녀석아. 냉면은 고급 요리가 아니다. 오늘 완전히 다른 맛의 세계를 보여 줄 테니 따라 와라.”


해경은 자신이 자주 가는 냉면집으로 복덩이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냉면을 두 그릇 시켰다.


복덩이는 해경이 냉면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자신도 젓가락을 들었다.


“앗! 차가워. 아저씨 이렇게 추운 날에 왜 이렇게 찬 음식을 먹어요?”


“냉면은 원래 추운 날 먹어야 맛 있는 거야. 빨리 먹기나 해.”


복덩이는 투덜거리며 다시 냉면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입 안에서 느껴지는 국물과 면의 조화. 복덩이는 단숨에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거, 봐라. 맛있지?”


“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봐요.”


“하하하! 자주 사주마.”


“정말요? 감사합니다.”


냉면을 다 먹은 해경과 복덩이는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불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콜록, 콜록, 콜록.”


해경은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옷깃을 위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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