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금, 어느 세상에 계실까

by푸른 소금

엄마는 지금 생각 중?

엄마는 오늘도 어느 날처럼 멍하니 소파에 앉아 계신다.

내가 시끄럽게 청소를 해도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해도

멍하니 한 곳 만을 바라보고 계신다.

초점 없는 눈빛, 미동도 없는 몸짓, 마치 엄마에게서 시간이 멈춰진 것 같다.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총명하셨던 엄마

엄마는 총명하셨다.

그리고 계산이 빠르셨고,

누구보다 판단이 정확하셨다.

낭비나 불필요한 소비를 철저히 줄이며,

조졸한 살림을 한 뼘씩 늘려 나가셨다.

그런 엄마가 지금은 TV리모컨도 켜실지 모르고,

오늘이 며칠인지, 심지어 아버지의 기일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나의 무지와 오해

나는 그럼 엄마를 보며

“아무 생각이 없으신가 보다”

“뇌가 이제는 서서히 멈추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계신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완전한 나의 오해이며 착각이었다는 것을.


멍한 순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

인지신경과학에서 “기본 모드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가 특정한 과제에 집중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오히려 활성화되는 뇌 영역들의 연결망이다.

주로 내측 전전두피질, 후측 대상피질,

하두정엽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이야말로 뇌가 가장 자유롭게 활동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때 뇌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회상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정신적 방황’이라 부른다.

정신적 방황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창의성과

문제해결, 그리고 자아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매가 이 네트워크에 미치는 영향

문제는 치매. 엄마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이

바로 이 기본 모드 네트워크를 가장 먼저,

심하게 공격한다는 점이다.

신경영상학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축적되는

위치와 기본 모드 네트워크의 영역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건강한 사람의 ‘정신적 방황’이 풍부한

내적 서사를 만들어 낸다면,

치매 환자의 경우 이 서사를 만드는 능력 자체가

손상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머릿속은 비어 있다는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기본 모드 네트워크는 손상되어도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는다.

뇌영상 연구들은 치매 환자에게도

여전히 부분적인 네트워크 활동이 관찰된다고 보고한다.

다만 그 활동은 건강한 사람처럼 정교하고,

연속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엄마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들


파편화된 기억의 단상

해마가 손상되면서 새로운 기억은 형성되지 않지만,

이미 오래전에 저장된 기억, 특히 감정이 강하게

결합된 기억들은 편도체와 측두엽 일부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기억들은 완결된 서사로 재생되기보다,

단편적인 이미지나 감각으로 순간순간 떠올랐다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젊은 시절 밭에서 일하던 감각

어린 자식을 품에 안았던 촉감...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사진 조각들이 순서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에 가깝다.


2. 사고에서 감각으로 이동

인지신경과학에서는 치매가 진행되면서

정보처리의 무게중심이‘하향식 사고’에서

‘상향식’ 감각처리로 이동한다고 본다.

전두엽이 주도하는 논리적 사고, 계획,

추론 능력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뇌간과

감각피질이 주도하는 즉각적인 감각반응이

의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즉, 엄마는 지금 특정한 생각을 하고 계신 게 아니라,

눈앞의 빛 소리, 온도, 촉감 같은 감각 정보를 수동적으로,

그러나 여전히 받아들이고 계실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결핍이라기보다, 다른 방식의 존재 양태일 수 있다.

3. 무표정 뒤에 숨은 무감동, 무감동증

무감동중은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70% 이상에서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다.

이것은 우울증과는 다르다.

우울증 환자는 슬픔이나 절망 같은 부정적 감정을 강하게 느끼지만,

무감동증은 감정 자체의 강도가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상태다.

무감동증은 전측 대상피질과 전두엽, 선조체 회로의 손상과

관련이 깊다.

이 회로는 동기부여와 목표지향적 행동을 담당한다.

이 회로가 손상되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요구 자체가 줄어들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둔해진다.

자발적으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엄마가 멍하니 않아 계신 것은 단순히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동기 자체가 신경학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건 엄마의 의지 부족이 아니다.

뇌회로의 손상으로 인한 증상이다.

감정기억은 인지기능보다 오래 남는다.

앞서 설명했듯, 편도체에 각인된 강렬한 감정 기억은

치매가 진행되어도 상대적으로 오래 보존된다.

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엄마가 지금 파편화된 기억 속에 있는지,

순수한 감각의 세계에 있는지, 아니면

무감동증으로 인한 정적 속에 있는지.

멍하니 앉아 있는 엄마의 귀에 대고

“엄마 무슨 생각하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나에게 “그냥”이라는 짧은 대답이 온다.

그 순간 엄마는 다시 이 세상 나에게로 돌아오신다.

과학도, 의학도 완벽한 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내가 아직까지는 엄마 곁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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