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씨에게 쓰는 편지

사람들 사는 게 다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by작은 사슴


안녕하세요 L 씨. 산바카라을 하다가 당신을 떠올려 편지를 씁니다. 이는 일부 거짓말임을 먼저 고백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산바카라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실로 밖에 나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으로 정원을 만들어 상상으로 음미하고, 창 밖에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를 주워와 그 정원에 뿌려놓았습니다. 바람만 불어주면 더할 나위 없는 가을 한복판의 정원이 나를 감싸돌더군요. 그래서 당신을 생각한 것은 참이고, 산바카라 중에 떠올렸다는 말은 일부 거짓이라 말해야겠지요. 실제의 산바카라을 싫어하는 데 이유를 꼽아야 한다면 외부세계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부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적적한 시골길이나 자연을 걸어 다니는 것은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일종의 자의식 과잉이라면 부정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보이기 시작하면 자신이 타인에게 어찌 비칠지 상상해 보는 능력은 신이 인간에게 강제로 부여한 능력이었습니다. 이따금 괴롭게 느껴지는 권능의 영향이 종교를 더 애틋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요.
사실 당신을 떠올린 이유는 당신을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무슨 말일까요. 빨간 코끼리의 법칙은 늘 빗나가는 법이 없어서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기로 다짐하는 순간 그는 순식간에 내 마음에 병영을 건설해 주둔하고 맙니다. 나가라고 종용해 봤자 도리어 총구를 들이댈 따름이겠지요. 그렇게 당신에 대한 심상이 바닥을 붙잡고 매달려 있습니다. 함께했던 마지막 휴일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총명한 지혜와 적소의 조언이 가슴 깊이 자리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아무래도 멈춰버린 모양이지만 소식이 끊겨 그저 유추해 볼 따름입니다.

얼마 전 H 씨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나에게 재능에 대해 일절 훈계하지 않았지요. 어쩌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 언제나 허공에 읊조리던 질문에 H는 허황되지 않게 공손히 의견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지속하라고 했어요. 그게 무엇이든 말입니다. 우리를 감미롭게 하고, 또 예민토록 하는 그 모든 것은 직업에 따라 바뀌는 무언가가 아니기에 꽉 쥔 두 손에 언제나 들어있는 것이라고요. 더불어 너무 꽉 쥐면 펴게 될 수 없음 또한 상기하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유약함을 아는 이는 매사에 당당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믿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빛나고 눈부신 일이 많을수록 자아는 초라해지고 비참해집니다. 그래서 더욱이 곁에 있는 사람을 빛나게 해 주던 당신이 생각나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전의 온라인 게임에서 몇 백 톤이 되는 화물을 옮길 때면 엄청나게 커다란 높이의 크레인을 사용했습니다. 운반 작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크레인을 운전하는 운전수와, 그 크레인에게 신호를 보내는 신호수, 그리고 그 화물에 줄을 매달아서 그 방향을 잡는 작업수까지 총 3명이 필요했습니다. 이 줄이 어떤 줄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냥 평범하게 얇은 밧줄입니다. 몇 백 톤의 화물을 단지 밧줄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직접 밧줄을 잡아보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지요. 화물을 드는 건 크레인을 이용하지만, 두 개의 줄을 걸지 않는 이상 화물은 이동하는 과정에서 빙빙 돌게 됩니다. 상상해 보세요. 머리 위 7M쯤 되는 높이에서 거대한 화물이 빙빙 돌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줄을 처음 잡는 작업자는 어김없이 이런 환상적이고 두려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막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닥쳐오면서 들고 있던 줄을 꽉 붙잡으면서도 그 줄에 끌려가게 되기 마련입니다. 근데 놀라운 건 몇백 톤의 무게는 크레인이 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아무리 무거운 화물이라 하더라도 그 가냘픈 인간의 손으로 제어하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불가능하다고 믿는 건 사람의 마음이지요. 두려움, 두려움 때문입니다.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이 거대한 화물이 중심을 잃고 돌다가 다른 데 부딪히면 온갖 안전사고를 유발할 것이고, 떨어지는 순간 나 자신은 끝장이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이 역설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행동마저도 못하도록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거대함을 유약함으로 조정하는 것이 진실로 가능한가요? 이런 질문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 속으로 침잠합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사실은 그걸 제어할 수 있는 힘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다고 믿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인간은 자신이 제어할 수도 없는 힘을 가지고 제어할 수 있다고 믿고.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제어할 수 없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오만이고, 후자의 경우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용기가 굉장히 중요한 이 시대에 재능이 된 게 아닐까요. 누구나 쉽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용기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예전에 다 죽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밤에 사냥을 하러 떠났고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이 시대에 살아남은 용기 있는 사람들은 진짜 용기가 아니라 용기가 없지만 용기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 사는 게 다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용기가 없어도 있는 척하면서 살고. 없어도 없는 대로 살고, 온통 겁쟁이들이 살아가는 거지요.

저도 맨 처음 그 밧줄을 잡았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어김없이 빙빙 돌기 시작하면서 저 또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제가 그때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줄을 놔버렸습니다. 너무 두려웠거든요. 처음에 그 거대한 화물이 돌면서 손에 힘이 받쳐올 때 당겨 보다가 내가 제어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그 줄을 놔버렸습니다. 이젠 정말로 그 폭주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겁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신호수는 제게 욕지거리를 했고, 그 줄은 빙빙 돌면서 사람들이 잡을 수 없게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러다 옆에 있는 난간에 그 거대한 화물이 돌면서 꽝하고 부딪혀 버리는 게 아닙니까. 보기 좋게 난간이 박살 나고 찌그러져 버리더군요. 화물은 계속해서 돌다가 몇 분이 지나자 잠잠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냐고요? 결국 망치를 들고 와서는 구부러진 난간을 다시 펴 놓았습니다. 얼기설기 울퉁불퉁하게 세워진 난간이 되긴 했지만 그것도 그런 데로 보기가 좋더군요. 그게 다였습니다. 그리고는 별 일이 없었지요. 저는 그 몇 백 톤짜리 화물이 세상을 전부 부숴 버리고 짓이길 줄 알았는데. 그걸로 인해 부서지는 건 단지 난간이었고. 그 난간은 제 힘으로도 다시 구부려서 원래대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새것처럼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는 누구도 그 울퉁불퉁해진 난간을 신경 쓰지 않더라는 겁니다. 물론 그 난간에 사람이 있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같은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작은 이벤트 혹은 거대한 인명사고로 나뉘게 되는 기준이 단순히 그곳에 사람이 있었냐 없었냐로 갈리는 것 또한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듯합니다. 최악의 사고는 알아서들 피하더랍니다. 일어날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사고는 구부러진 난간에 그칩니다. H 씨의 말은 언제나 옳았고, 이번에도 과거의 경험에서 깨달음을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총명함을 증명했습니다. 다시 용기가 생겨나는 것만 같군요.

환절기가 되면서 비염이 성행하는 모양입니다. 코를 훌쩍이며 숨을 겨우 쉬는 이들의 안타까움이 자못 숨을 답답하게 합니다. 비염이 심한 사람은 대화를 할 때 하나의 행동만을 강제당하게 됩니다. 코가 제 기능을 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입은 말을 하고 코는 숨을 쉬지요. 눈은 상대를 보고, 귀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코가 기능하지 못하면 입이 기능을 대신해야 하며, 말하기와 먹기 등 입의 고유적인 능력은 다른 감각기관이 대신할 수 없으므로 입은 아무 막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혼자 껴안게 되는 셈입니다. 특히 숨 쉬는 것이 제한당한다는 건 다른 그 어느 감각기관보다도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초래하지 않습니까? 음식을 당장 먹는 것도, 말을 꺼내는 것도 생명에 당장의 위협이 되지는 않는 법이고, 입으로 숨을 쉬는 사람은 타인과의 온라인카지노 대화에서 대화하고 커피를 마시는 단순한 동작에도 생명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까닭은 나와 있는 시간에 그 정도의 정성을 할애하는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흔한 질병에 걸린 것만으로도 인간은 위협을 감지한 채 살아가야 하고, 그런 이들에게는 평범한 대화조차 꽤 유의미하게 위험한 행위라고 볼 수 있을 테죠. 사람이 무언가를 나누기 위해 긴밀하게 협조하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효율성이 떨어진다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비효율에서의 감질맛이 삶을 살맛 나게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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