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장: 본능적인 직감과 손목 위의 애플워치

by박태훈 작가

그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깨운 것은 아주 미미하고도 차가운 소름이었다. 상장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거대한 환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내 몸 깊은 곳에 내재된 야생의 생존 본능은 끊임없이 비상벨을 울려대고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코딩 오류를 찾아내던 천재 개발자의 직감이자, 정글 같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뼈를 깎으며 살아남은 창업가의 촉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고일의 지나치게 완벽한 대답, 주관사 심사역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보여준 그 능구렁이 같은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서명을 고집스럽게 받아내던 그의 집요함. 그 모든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재조합되며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돕는 구원자가 아니라,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 넣기 위해 등을 떠밀고 있는 사냥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내려 내 왼쪽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얼마 전 직원들이 내 생일을 기념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선물해 준 Apple Watch가 채워져 있었다. 평소에는 그저 시간이나 확인하고 운동량이나 체크하던 가벼운 기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손목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검은색 스트랩과 메탈 바디는 내 생명을 구원할 유일한 블랙박스처럼 느껴졌다. 최고일이 나를 파멸시키기 위한 종이 증거들을 치밀하게 쌓아 올리고 있다면, 나는 이 디지털 기기 안에 그의 진짜 목소리와 음모를 담아야 했다. 법은 문서로 말하지만, 진실은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에서 밝혀지는 법이니까.


나는 조용히 오른손 끝으로 화면을 톡 두드렸다. 어두운 액정이 켜지며 둥근 다이얼과 애플리케이션 아이콘들이 나타났다.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음성 메모 앱을 실행했다. 화면 중앙에 자리 잡은 붉은색 녹음 버튼이 마치 괴물의 심장처럼 붉게 박동하는 듯했다.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와 최고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전쟁으로 접어들게 될 터였다. 하지만 내 이성은 이미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 끝으로 그 붉은 원을 눌렀다. 화면 상단에 미세한 파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진동이 햅틱 엔진을 타고 내 손목뼈를 가볍게 때렸다. 준비는 끝났다.


마치 내 결심을 기다렸다는 듯, 대표이사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최고일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두꺼운 서류철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특유의 인자하고 사람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 눈에는 그 미소 뒤에 가려진 뱀의 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표님, 주관사 녀석들 완전히 우리 페이스에 말려들었습니다. 이번 분기 실적만 이대로 유지하면 거래소 예비 심사는 그저 통과의례일 뿐입니다. 아주 잘 흘러가고 있습니다.


최고일은 자연스럽게 내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서류철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부드럽고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손목을 테이블 아래로 슬그머니 내리며, 마이크가 그의 방향을 향하도록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최대한 불안하고 유약한 젊은 CEO의 가면을 썼다.


그렇더군요. 하지만 최 이사님, 제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개운치 않습니다. 그 가공 매출 건 말입니다.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겁니까? 만약 국세청이나 금감원에서 들이닥쳐서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목소리에는 연출된 떨림과 불안이 섞여 있었다. 최고일은 내 불안을 비웃듯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허허, 대표님.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자금은 이미 완벽하게 돌았고, 계약서상 하자는 전혀 없습니다. 국세청이 와도 털어갈 먼지 하나 안 남겨놨으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모든 설계는 제가 했습니다. 문제 생기면 제가 감방이라도 갈 테니 대표님은 그저 상장식 때 입을 양복이나 고르시면 됩니다.


최고일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오만하고 거침없는 문장들이 내 손목 위의 애플워치 마이크로 고스란히 빨려 들어갔다. 모든 설계는 제가 했습니다, 문제 생기면 제가 감방이라도 가겠습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범죄 교사와 바카라임 인정의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내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을 유지했다.


그래도 이사님, 모든 결재 서류와 자금 이체 확인증에 제 서명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법적으로는 최종 바카라임자가 저인데, 제가 독박을 쓰는 구조는 아닙니까? 솔직히 잠이 안 옵니다.


내가 한 걸음 더 깊숙이 미끼를 던지자, 최고일은 짐짓 정색을 하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바닥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대표님, 저 최고일입니다. 제가 전 온라인 게임에서도 이런 식으로 세 개 회사 상장시켰습니다. 그때도 대표들은 다 무사했습니다. 제가 다 알아서 방패막이가 될 테니 저만 믿으십시오. 대표님이 흔들리시면 직원들이 흔들립니다. 지금은 상장이라는 거대한 목표만 보고 달리셔야 합니다. 다른 잡음은 제가 다 막아내겠습니다.


그의 위선적인 위로와 확언이 녹음기 안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최고일의 손을 마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이사님. 이사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내 입에서 나간 그 굴종의 대답은 최고일을 완벽하게 안심시켰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덫에 내가 완전히 갇혔다고 확신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으리라.


최고일이 서류를 챙겨 방을 나간 후, 나는 손목 위의 애플워치를 확인했다. 녹음 시간은 오 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녹음 중지 버튼을 눌렀다. 다시 한번 미세한 진동이 손목을 때리며 파일이 저장되었음을 알렸다. 이 작은 디지털 기기 안에, 내 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 악마의 숨소리와 추악한 음모가 완벽하게 기록되었다.


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코딩밖에 모르던 천재 개발자가, 이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손목 위의 스마트워치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현실이 서글프면서도 잔혹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최고일이 파놓은 지옥의 함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내 사람들과 제국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 진흙탕 싸움에서 기어이 승리해야 했다. 내 손목 위의 Apple Watch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악마의 목을 벨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자, 내가 쥐고 있는 유일한 반격의 열쇠였다. 어둠 속에서 진실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Apple Watch와 연동된 녹음 파일이 클라우드에 안전하게 업로드되었는지 확인했다. 동기화 완료라는 짧은 메시지가 뜨자 그제야 억눌렸던 숨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최고일은 내가 여전히 상장이라는 달콤한 과실에 눈이 멀어 제 발로 낭떠러지를 향해 걷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의 오만함은 결국 그가 파놓은 함정의 깊이를 더할 뿐이었다.


기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평생을 바쳐 신뢰해 온 유일한 진리가 이제는 내 생명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최고일이 준비한 아날로그의 덫을, 나는 가장 진보된 디지털의 기록으로 깨뜨려 버릴 것이다. 내 손목 위에서 묵묵히 박동하는 애플워치의 푸른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제 사냥꾼과 사냥감의 위치는 소리 없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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