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내 제국의 열쇠를 그에게 완전히 내주었다. 내 손으로 찍은 붉은 인주는 단순한 결재의 흔적이 아니라, 내 눈과 귀를 가리겠다는 자발적인 서약서나 다름없었다. 최고일은 내 안의 가장 취약한 부분, 즉 경영자로서의 불안감과 위대한 창조자가 되고 싶다는 오만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뱀이 먹잇감을 칭칭 감아올리기 전에 몸을 부드럽게 밀착시키듯, 그의 속삭임은 매일 조금씩 더 달콤하게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대표이사실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발소리는 늘 고요했다. 그는 결코 내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고, 내가 모니터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면 조용히 다가와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대표님, 이 자질구레한 지출 결의서들과 영수증 증빙 자료들은 더 이상 보실 필요 없습니다.
그가 서류철을 펼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안경을 벗으며 피로한 눈을 비볐다. 수백 장에 달하는 부서별 지출 내역을 검토하는 일은 내게 고문과도 같았다. 최고일은 내 표정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상을 바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머리로 왜 이런 소모적인 숫자를 들여다보고 계십니까. 대표님의 일분일초는 수억 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지저분하고 지루한 땅 위의 일들은 제가 알아서 정리해 두겠습니다. 대표님은 오직 하늘을 나는 일, GP4의 고도화와 우리 회사의 미래 비전에만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대표님이 하셔야 할 유일한 의무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내 무능함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그 따뜻한 배려는, 사실 내 눈을 가리기 위한 첫 번째 장막이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결재 서류의 내용을 확인지도 않은 채, 그가 가리키는 서명란에 기계적으로 사인을 해나갑니다. 내가 사인을 마칠 때마다 최고일의 입가에 미세한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것을 노련한 조력자의 안도감으로만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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