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평균 이하의 젊음
언제부터였을까. 돌이켜보면 수능 시험지를 받아 들던 그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평균'이라는 안락한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기를 쓰고 달릴 때, 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평균 이하'의 삶을 향해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나는 유난히 공부를 싫어했던 아이였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만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철부지 그 자체였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는 시간마저 내 편은 아니었다. 옆을 보면 친구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앞서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뒷모습만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뭘 그렇게 서둘러들 가니."
속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멈춰 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지나쳐가고 있다는 것을. 나조차 포기해버린 내 인생을, 부모님은 이 악물고 버텨주셨다. 덕분에 이름도 생소한 지방대학교에 턱걸이로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부지 아들은 부모님의 피땀 어린 노력에 고마워할 줄 몰랐다. 오히려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 양 구는 '후레자식'이었다. 땅이라도 파면 돈이 나오는 줄 알았나? 아니면 자식이라면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만약 내 자식이 그때의 나처럼 행동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어리석은 머가리를 쪼개버렸을 것이다.
인정받아 본 적 없던 삶에서, 지방대학교는 진정한 우물 안 개구리의 왕국이었다. 그곳에서는 조금만 노력해도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오만함은 더욱 커졌고,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졸업 후, 뼈아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뭐라도 된 양,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사업이라는 위험한 도박에 손을 댔다.
그 아까운 돈... 만약 그때 그 돈을 아껴놨다면 지금쯤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는 가지고 있었을까? 어리석음과 오만함으로 점철된 사업 실패는 나에게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어차피 밑바닥이었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라고 정신승리를 하기엔, 내가 지불한 비용이 너무나 컸다.
빚더미에 앉아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겁쟁이 기질 덕분인지, 죽음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가소로운 자존심... 끝끝내 '노가다'만은 하지 않으려 버텼다. 하지만 쌓여가는 빚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었다. "거긴 얼마 준대?" 투전판을 찾아 헤매는 놀이꾼처럼, 돈 몇 푼에 자존심이고 뭐고 팽개치고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이미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 변변한 회사 취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어른들의 꾸중을 들으며 자랐던 세대였지만, 결국 나는 돌고 돌아 내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그 밑바닥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참회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했는지를.
이것이 나의 '평균 이하'였던 젊은 날의 솔직한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