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인 제가 어쩌다 그림 전시회를 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와 그림, 한권의 바카라과 전시회가 되었다.

by박승일








우연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4년여가 지났다. 오마이뉴스에서도 한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 ‘20여 년 현직 경찰인데 요즘 유화 배웁니다, 왜냐면’이라는 글이었다.


그전까지는 몸을 쓰는 복싱을 몇 년 동안 취미로 배웠다. 경찰관이라는 직업에서 오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정반대의 취미를 가져보고 싶었다. 그렇게 별다른 계획도 없이 무작정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오래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덧 4년이 흘렀다. 내가 지금까지 유화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싫증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림의 주제가 조금 특별했다. 경찰관으로 일하며 다양한 신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기쁜 얼굴도 있었고, 화난 얼굴도 있었다. 두려움에 떨던 사람도 있었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주변 지인들의 모습을 하나둘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 한 장을 찍어놓고 캔버스 앞에 앉아 그 사람의 눈과 코, 입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평소에는 몰랐던 표정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의 얼굴을 그리다 보니 어느덧 60여 점의 작품이 탄생했다.


사람과 숲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사람의 표정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다. 봄처럼 따뜻한 표정이 있고, 여름처럼 뜨거운 얼굴이 있다. 가을처럼 쓸쓸한 눈빛도 있고, 겨울처럼 차갑고 외로운 표정도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얼굴과 함께 사계절을 상징할 수 있는 풍경도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사람과 풍경이 모여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사람과 숲’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하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투박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아직 아마추어의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적어도 20시간 이상 붓을 잡아야 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이 걸린 작품도 있다.


유화는 기다림이 필요한 그림이다. 한 번 칠하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색을 올린다. 그렇게 여러 번 붓질을 반복한다. 그림이 완전히 마르면 바니쉬 작업도 한다. 바니쉬는 그림의 색을 살리고 광택을 내면서 변색이나 오염으로부터 표면을 보호하는 투명 코팅 마감이다. 그렇게 한 작품이 완성된다.


생각해보면 지난 4년 동안 매주 조금씩 그림을 그렸다. 직업은 경찰관이지만 토요일이면 화실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붓을 들었다.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계속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하나둘 쌓였고, 그 그림들이 이제 작은 전시회를 열 만큼 모였다. 그래서 나에게 이번 전시회는 단순히 그림을 벽에 걸어놓는 자리가 아니다. 한 온라인 게임인이 좋아하는 일을 4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더니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회는 서울 서초구 소재 문화공간 스페이스 다온(서초구 효령로 423))에서 개최된다.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다. 전시회를 통해 얻은 수익금의 일부는 자살예방 상담전화인 ‘생명의전화’에 기부할 예정이다.


그림을 잘 알지 못해도 괜찮다. 미술에 관심이 많지 않아도 좋다. 그저 경찰관 한 사람이 4년 동안 퇴근 후와 주말에 틈틈이 그려온 사람들의 얼굴과 풍경이 궁금하다면 편하게 들러주었으면 한다.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이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응원이 될 것 같다.


경찰관으로 살아가며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화실에서는 그 사람들의 표정과 삶을 다시 생각하며 붓을 들었다. 어쩌면 이번 전시회는 그림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지난 4년 동안 사람을 바라본 시선을 보여주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봄 같은 얼굴이, 누군가에게는 가을 같은 풍경이 오래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다. 올가을, ‘사람과 숲’에서 잠시 만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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