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여름방학 (1)

by빈칸센

제일 싫었던 방학 숙제를 꼽으라면, ‘일기 쓰기’를 골랐다. 매일을 기록하는 건 초등학생에겐 정말 가혹한 일이다. 게임, TV, 놀러 나가기 등등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자기 전 바카라상에 가지런히 하루를 적는 일이 재밌을 리도 없다. 남이 시켜서 하는 거라면 더더욱. 그리도 싫어했던 걸, 굳이 시간과 비용을 내고 참여한다.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여름은 어땠는지, 내 여름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올해 7월은 유독 떠나보내기 싫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본 감정을 어찌할 줄 몰라 울컥했다. 몇몇 순간들이 스쳐 지났다. 푸른 바다 소리나 나를 알아주던 이의 목소리. 삼바의 리듬 등등 이것저것 섞여있다. 여러 가지 맛을 담은, 31가지의 아이스크림처럼. 각자의 색과 향을 가졌다. 가끔은 두 맛이 섞여 독특한 풍미가 난다. 그중 가장 예쁘고 달콤한 맛을 고른다. 선홍빛, 딸기 샤베트 같은 기억. 이맛의 이름을 7월 13일이다. 오늘부터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우리는 강릉으로 떠났다.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 혼자 가기 싫었다. 친구 2명을 꼬셨다. 올 2월 퇴사 후, 어른 방학을 선언한 나와 자영업자가 된 친구 둘. 남들 다 일한다는 월요일에 떠났다.


여행의 시작은 영화 ‘안경’이다. 조용한 바다 마을에서 하루 종일 사색하는 내용으로, 시끄럽게 살던 주인공이 점점 평안해지는 내용. 탁 트인 바다, 나도 잔잔해지고 싶었다. 생각들을 저 파도에 실어 보내며 - 비워내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데 사색이 가능할 리가 없다. 여름 도서관을 생각해 보자. 혼자서 잘하다가도 친구를 발견한다면. 괜히 말을 걸고 - 매점에 가자며 떠들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니 혼자 가는 게 맞다. 이것이 차분하고 성숙한 어른의 자세임이 틀림없었다. 문 밖을 나서는데, 볕이 참 뜨겁다. 모래사장도 당연히 뜨겁겠지. 처량할 것 같다. 그늘 한 점 없는 바다에 혼자 앉아 있는 나. 사색도 살만 하니까 하는 거지. 땡볕더위 아래선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 그래서 친구들을 불렀다. 나중에 같이 떠올려줄 사람이 있음 더 재밌을 테니까.


7월 13일의 강릉은 정말 아름다웠다. 수채화 같은 바닷가. 탁 트인 지평선. 시원한 풍경 안에 내가 있었다. 들숨에 ‘좋다’ 날숨에 ‘진짜 좋다’가 새어 나온다. 바다가 파래서, 시원해서, 한적해서, 즐거워서 좋았다. 모든 게 이유가 되어 주었다. 친구들이 있어 더 행복했다. 좋다는 건 나눌수록 더 넓어지는구나 새삼 느꼈던 날. 파도 소리만 잔잔히 들렸다. 평일이 가져다준 여유가 보인다. 파도에 모래를 씻어내고 잠시 생각한다. 6개월의 방학도 슬슬 끝내야 할 때인 것 같다. 정해진 결말, 모르지 않았지만 슬펐다. 마냥 놀고 싶은데 - 지금처럼 여기저기 쏘다니고 싶은데. 월세, 관리비와 내 미래가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다니고 담아 두어야지. 1시간 정도 지났나 벌써 갈 시간이다. 탁 트인 바다를 뒤로 한채 서울로 돌아간다.


시간이 짧아서 그런가. 당일치기 여행은 유독 꿈처럼 느껴진다. 일요일의 낮잠처럼.

그저 좋기만 했던 하루를 보낸다. 26년의 7월 13일은 오래도록 담아둘 것 같다.


https://youtu.be/sDKhhUGnxZw?si=iV1DkKtmKLUph6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