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메인보드에 적층 된 20년의 고전압 노이즈
스물아홉이라는 이른 봄, 내 육신의 메인보드에는 당뇨와 고혈압이라는 비정상적인 에러 로그가 기재되었습니다. 이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20년의 세월 동안, 내 아침과 저녁은 부스럭거리는 한 움큼의 약봉지를 털어 넣는 건조한 소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고지혈증, 간수치 이상, 지방간이라는 레거시 노이즈(Legacy Noise)가 지층처럼 적층 되어 갔고, 수만 알의 약봉지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리하지 못한 채 당장의 수치만을 가려주는 위태로운 ‘화학적 패치(Chemical Patch)’에 불과했습니다.
약 기운에 혈당이 널뛰는 저혈당의 파고가 오면 짐승 같은 허기를 참지 못해 아내에게 이유 없는 짜증을 퍼부었고, 고혈당의 피로가 덮치면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사정없이 쳐냈습니다. 새벽녘에 일어나 빵을 찾아 먹는 무질서한 탐식의 수치심을, 가장 가까운 동반자의 평온을 찬탈하는 무력한 권력으로 휘둘렀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숏츠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안에서는 또다시 훈계하고 잔소리하고 싶은 오만한 통제 욕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것도 못 보게 하면 나는 스트레스를 어디서 푸느냐"는 아내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찰나의 순간 과거의 에러 로그가 오버랩되었습니다.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며 아들 둘과 시부모를 모시고 살던 시절, 아내의 유일한 정서적 냉각 장치였던 TV 시청조차 '쓸데없는 짓'이라 비난하며 정서적 폭력을 가했던 내 비정한 초상이었습니다.
정통 개혁주의 신학이 고백하는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내 가정이라는 가장 중요한 기지국의 비명은 외면한 채, 10원의 이득과 숫자놀음에 집착하며 아내의 영혼에 과전압을 쏟아붓던 내 이기적인 자아의 정직한 파산 로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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