恋におちて
https://www.youtube.com/watch?v=CFwVtgtjC0s
1.
민박집 방안은 끈적한 열기와 묘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삼각관계를 넘어서 사각관계랄까..
낡은 장판 위로 쏟아진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내 시선 때문인지 미경의 뺨이 화끈거려 보인다.
모두 각자 주량은 오버한 지 좀 된다.
피곤하기도 하고.. 넷이 그렇게 방바닥에 앉아 술을 계속 청하는 건 젊어서 그걸 거다.
맥주 캔을 부딪히며 해연이 미경에게
"미경아, 너 학기 초 가장 뜨거운 빨간색'을 찾고 있을 때 기억나니?"
내가 이어받으며
"그래 그때 미경이가 좀 헤매는 거 같아.. 마티스의 붉은 방처럼 공간 전체를 빨강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영훈이가 받아친다.
"아니지 그때 내가 일단 피가 이론적으로는 젤 뜨거우며 빨갛다고.."
하는데 해연이 가로채며
"난 따뜻한 코코아에서 채온을 느낄 수 있으면 가능하다 했고"
생각해 보니 우린 그때 네 명이 그렇게 처음 모여 담론인지를 했다.
우리는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며 새우깡을 먹어가며 수다를 떤다.
미경은 무릎을 세워 안고는 일부러 셔츠 소매를 만지작거린다.
거기엔 낮에 야외 스케치 때 나와 장난치다 묻은 연두색 물감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술버릇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영수증 뒷면에 미경이를 크로키하고 있다.
내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사각사각’ 소리가 거슬리는 듯 미경은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찌 보면 내 옆 뒤쪽 벽에 기대고 있는 해연이를 보는 것도 같다.
해연이 갑자기 소리치듯
"야 우리 진실게임 어때 응?"
2. (계속되는 나의 시점)
“자, 병 또 돌아간다! 이제 딴짓하기 없기.”
해연이가 소주병을 돌린다.
노란 장판 위에서 병이 비틀거리며 돌 때마다 긴장감이 느껴진다.
.....
마침내 병 주둥이가 회전력을 잃고 스멀스멀거라다가..딱 미경 앞에서 멈춘다,
“미경아! 질문 들어간다. 너, 지금 이 자리에...
당장이라도 캔버스에 눕혀 밤새도록 그리고 싶은 사람 있어?”
해연이의 질문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미경은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지만,
시선은 나의 손가락 끝을 향해있다.
나는 잠시 미경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나의 목울대가 크게 한 번 일렁인다
미경의 시선은 나를 정확히 내 목을 향하고 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영훈이가 캔맥주를 탁 소리 나게 따더니,
미경 쪽으로 상체를 쑥 들이밀며
“질문이 너무 추상적이다. 미경아, 차라리 이렇게 물어볼까? 네가 이번 전시회 때 받은 그 비싼 물감, 그거 나랑 같이 가 종로 화방에서 산 거잖아. 그거 누구 그리려고 아껴두는 거야?”
영훈이는 미경의 허벅지에 손을 슬쩍 올리며 미경을 응시한다.
녀석의 눈빛은 느끼하면서도 ‘너한테 투자한 시간이 얼만데’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미경은 소름이 돋는 것처럼 몸을 비틀었지만,
영훈이는 보란 듯이 미경 어깨를 확 감싸 안으며 나를 노려본다.
“준호 넌 어때? 예술하면 보는 눈이 있을 텐데.
미경이가 지금 누굴 그리고 싶어 하는지, 니 크로키엔 답이 나와 있어?”
나는 드디어 고개를 들어 녀석을 본다.
영훈의 손이 미경의 어깨에 닿아 있는 게 나를 욱하게 만들지만
“글쎄. 그림은 눈이 아니라 손끝으로 그리거든.
지금 미경이 손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나보다 니가 더 잘 알 거 같은데?”
나는 미경의 셔츠 소매에 묻은 연두색 물감에 시선이 멈춘다.
그건 우리 둘만 아는 표식 같은 거.
영훈이는 그 의미를 모른 채 미경의 어깨를 더 세게 끌어당기며 비웃으며
“손끝? 미경이 손은 지금 나한테 있어, 준호야. 현실을 좀 보지 그래?”
영훈의 뜨거운 손바닥이 미경의 어깨를 압박해 오고,
나의 차가운 눈빛은 미경의 심장을 꿰뚫을 거 같다.
이 눅눅하고 팽팽한 공기 속에서 숨이 막혀.
더 이상 둘 의 노골적인 소유욕 사이에 끼어있을 수가 없는..
뭔가 이건 아니다. 미경이 짧게 말한다.
“나.. 화장실 좀.”
미경은 영훈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현관을 박차고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거센 소나기가 퍼 붙기 시작한다.
미경의 온몸을 적셔. 처마 밑에 서서 젖은 얼굴을 닦아내는데,
문이 부서질 듯 열리더니 누군가 미경의 허리를 뒤에서 낚아채며 벽으로 밀어붙인다.
3. (전지적 시점으로)
뒤편에서 들려온 건 거친 숨소리가 아니라, 낮게 깔린 서늘한 실소.
“둘 다 진짜 가관이다.”
허리를 낚아채듯 밀어붙인 건 준호도, 영훈이도 아닌 해연이다.
그녀는 미경의 양어깨를 벽에 박아 넣듯 짚은 채,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번득이는 눈을 미경의 코앞까지 들이민다.
빗소리가 고막을 때리는데,
해연의 목소리는 빗줄기를 뚫고 미경의 심장에 직접 꽂히는 것 같다.
“미경아, 너 지금 즐기고 있지? 두 남자가 너 하나 두고 안달복달하는 이 상황.”
“... 해연아 (너 무슨 말을)...”
“내가 가교과 전공이라 니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줄 알았어?
나, 너희 셋이 만드는 이 유치한 정물화 구경하는 거 이제 지긋지긋해. ”
계속해서 해연을 응시하는 미경.
”준호가 영수증 뒷면에 니 얼굴 그릴 때,
내가 그 녀석 뒷모습 보며 무슨 생각했는지 넌 상상도 못 할걸.”
해연이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미경의 셔츠 안쪽 살을 저릴 정도다.
방 안에서 영훈이와 준호가 싸우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지만,
해연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미경을 몰아붙인다.
“영훈이가 너 주려고 을지로 뒤져 물감 구해올 때,
그 녀석 옆에서 길 찾고 짐 들어준 건 나였어.”
”미안..그땐 정말”
미경을 말울 팍 끊으며
”근데 그 물감으로 넌 준호랑 비밀 표시나 하고 앉아있고...(쏘듯이) 너, 진짜 나쁜 애야.”
해연이의 눈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고인다.
그녀는 미경의 셔츠 소매에 묻은 연두색 물감을 혐오스럽다는 듯 쳐다보다가,
갑자기 미경의 얼굴 근처로 좀 더 해연이 얼굴을 들이댄다. 둘의 거리는 거의 없다.
“미안하지만, 이 사각관계 오늘 내가 끝내줄게.
준호도, 영훈이도 오늘 밤 못 잘 거야. 나 때메.”
그때,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준호와 영훈이가 동시에 밖으로 튀어나온다.
빗속에서 해연이가 미경을 벽에 밀어붙이고 있는 광경을 보고 쇼킹에 둘 의 얼굴은 거의 얼어있다.
(ほっとかないからね 너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첫마디)
4. (미경의 시점에서)
해연이는 망설이지 않았어.
당황해서 굳어버린 준호와 영훈의 시선이 우리에게 박히는 그 찰나,
그녀는 내 뒷머리를 감싸 쥐고 그대로 입을 맞춰왔어.
차가운 빗물이 우리 사이를 타고 흐르는데,
입술에 닿은 해연이의 온도는 지독할 정도로 뜨거웠지.
"읍...!"
놀라서 눈을 크게 뜬 내 시야 너머로,
준호의 손에 들려 있던 영수증 종이가 빗물에 젖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게 보였어.
영훈은 들고 있던 우산마저 놓친 채 입을 벌리고 서 있었고.
해연이는 보란 듯이 깊게 파고들다가, 천천히 입술을 떼며 나를 놓아주었어.
그리고는 멍하니 서 있는 두 남자를 향해 비웃듯 고개를 돌렸지.
"어때? 너희 둘이 그렇게 물고 뜯고 싸울 때, 미경이 입술은 내가 먼저 흠쳤다."
해연이의 목소리는 빗소리보다 더 선명하게 마당을 울렸어.
준호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고,
영훈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 그 입 그대로 멈춰져 떨고 있었지.
"너희 전공 지식 다 합쳐봐야 사랑 앞에는 아무짝도 쓸모없어.
예술? 경제? 웃기지 마. 지금 여기서 누가 가장 경제적이고,
누가 가장 미학적인지 똑똑히 보라고."
해연이는 내 손목을 꽉 쥐고는 질질 끌다시피 빗속으로 걸어 나갔어.
등 뒤로 준호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해연은 멈추지 않았지.
"가자, 미경아. 쟤네는 밤새 저기서 지들 존심이나 제라고 해."
강촌의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고,
민박집 앞마당에는 주인 잃은 노란 우산과
빗물에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준호의 크로키만이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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