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시 도쿄에 배낭여행을 한다.
109 백화점의 원통형 외벽에는 활짝 웃고 있는 아무로 나미에의 사진이 걸려있다.
좀 걸어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는데
갑자기 사방팔방에서 수천 명이 쏟아져 나온다
한 명도 부딪히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현란함.
눈에 띄는 건 노랑 핑크 파랑으로 길게 염색한 머리의
갸르 (걸의 일본어 발음으로 현모양처보다는 자기 주체사상으로 사는 뭐 그런 애들)
종아리에는 허벅지까지 붕대보다는 두꺼운 하얀 토신가 버선 같은
주름진 몽글몽글한 것을 신고 굽은 장난 아니게 높아 나보다 큰 애들이 많다.
좀 더 주위를 살피니 사방팔방에서 언니들의.. 까르르 하며
바닷속 참치 떼들 마냥 무리를 지어 이동하다가 사라져 간다.
순간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담고 싶었지만 너무 빨리 사라진 그녀들.
일본이 진짜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찌는듯한 시부야의 여름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계속해서 등에 차는 땀을 별도로 하고.. 해가 너무 강렬하다.
아스팔트의 열기에 온몸은 물인지 땀인지. 연속해서 물을 마시지만
자판기에서 파란색 하얀색로고의 포카리 스웨트를 마신다.
하라주쿠까지 이리 멀 줄이야.. 연속해서 보이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 마시고
구겨진 지도로 헤매다 알 수 없이 쓰인 글자로 된 서점에 들어간다.
특유의 묵직한 종이 냄새와 초 강력한 에어컨 바람.. 엄청나게 시원하다.
이런 바카라들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색깔부터 디자인 사진까지 훑어 보느라 1시간이 지난다.
좀 특이한 바카라을 몇 권 꾸려 계산하고 나오는데 계산원도 갸르다.
여행사에서 미리 예약해 둔 도심 외곽의 비즈니스호텔에 9시까지는 가야 한다.
편의점에서 점심때 사 먹었으니.. 아시히 비르에 야키도리를 먹고 싶어진다.
7시가 좀 넘어서자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닭이 그려져 있고 다양한 한자가 그려져 있는 허름한 이자카야로 들어간다.
2-3인용 테이블에 4-5개 정도에 카운터. 손님은 카운터에 하나 테이블 세 팀정도..
특이한 건 가게 구석 천장에 매달린 브라운관 TV.
사장이 안내하는 대로 카운터에 앉는데 뭘부터 어떻게 시켜야 할지..
역시 손짓 발짓으로 투박한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원한 생맥주가 먼저 나온다.
걍 한숨에 들이킨다. 맥주가 이리 맛있나. 다시 힘껏 들이켜
완샷을 하자.. 한자리 건너 앉아있던 털보 아저씨가
스게이나( 훌륭하네)... 그다음 말은 잘 들려오지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관광일어바카라으로 공부 좀 하고 왔는데.. 영 현지 일어는 전혀 달랐다.
잠시 후 닭꼬치가 두 접시가 나온다.
얼을 듯한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뜨거운 꼬치를 입에 넣자.
한국에서 가끔 먹던 일본식 술집 십팔번의 맛과 느낌은 전혀 다르다..
생각해 보니 지닌 돈이 넉넉지 않다.
생각 같아서는 생맥주 잔도 작은데 400엔이나 하니.. 좀 비싸게 느껴진다.
왁자지껄한 수다와 함께 서로 술잔이 부딪히고 주위를 살펴보며
담배를 하나 당기는데..
"마와레 마와레 메리 고 라운드~".
당시 열도를 강타한 드라마 롱 버케이션 뮤비가 텔레비전에서 나온다.
뭔가 상당히 재밌는듯한 느낌의 드라마다.
그러다가 캐릭터 중 위의 마츠 타카코를 보는 순간.
번쩍하고 작년이 오버랩된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
미경.
벌써 1년 정도 돼 간다.
미경이한테 무참히 차인 게.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