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색이 번지는 자리 2

by홍길동

갈등을 부추긴 미숙한 화가가 아니었던가......



 상념을 뒤로한 채 미술관을 나섰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도심의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화폭의 상생을 더듬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숨을 고르던 그때, 도심의 빌딩 숲 사이로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출퇴근길에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늘 그 자리에 있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미술관 화폭의 잔상이 남아있던 내 눈에, 그날의 태극기는 전혀 다른 빛깔로 다가왔다. 순백의 바탕 위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맞물려 도는 적(赤)과 청(靑)의 태극 문양. 아버지의 붉은 세월과 조카들의 푸른 미래도 저 태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채워주며 함께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온 저녁, 명절 식탁의 공기는 여전히 조금 서먹했다. 낮게 가라앉은 침묵 속에서 아버지는 묵직하게 수저를 들 뿐이셨다. 나는 말없이 손을 뻗어 잘 익은 갈비 한 점을 조카의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머쓱해하는 조카의 술잔을 채워 주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조카는 제 접시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 얼굴에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어설프게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말없이 내 잔을 채우고는 먼저 잔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아버지의 눈가에도 팽팽했던 긴장이 슬며시 풀렸다. 아버지는 당신 밥그릇 위의 고기 반찬을 조카 쪽으로 슬쩍 밀어놓으시며 "많이 먹어라"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아버지만의 투박한 사과이자 손을 내미는 방식이었다. 맑은 소리를 내며 술잔이 부딪치는 그 짧은 순간, 식탁을 맴돌던 서먹한 공기가 소리 없이 사그라들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조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런 식탁은 꿈꿀 수 있겠네요."

 내 집 마련은 평생 꿈도 못 꾼다던 조카의 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카의 잔에 술을 한 번 더 채워 주었다.

 어쩌면 화합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갈비 한 점이면 충분하고, 말없이 채워 주는 술잔 하나면 족할지도 모른다. 식탁 위로 따뜻한 온기가 다시 번지는 것을 느끼며, 낮에 미술관을 나서던 내 발걸음이 왜 그토록 가벼웠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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