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 속 파수꾼 2

by홍길동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내 시선은 어느새 보리의 먼지 묻은 코끝에 완전히 붙잡혀 버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타인의 안녕을 위해, 기차가 격렬하게 흔들릴 때마다 온몸으로 바닥을 움켜쥐며 버티는 늙은 개의 뒷모습을 보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묘한 균열이 일어났다.

나는 왜 그토록 빨리 달리는 기차 안에서조차 더 빨리 가지 못해 안달하며 살았을까. 속도가 곧 경쟁력이자 가치라고 믿었던 나의 삶은 정작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걸까. 목적지에 닿는 순간만을 향해 질주하느라, 정작 내가 안전하게 딛고 서 있는 오늘이라는 무대의 소중함을 돌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승객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가장 어둡고 낮은 의자 밑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보리의 실루엣은, 내게 '진짜 중요한 삶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묵묵히 가르쳐주는 듯했다.

대전역에 도착해 마지막 열차 순찰을 마치고 내리는 보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가만히, 길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철길의 끝에 종착역이 있듯, 보리가 이 좁은 통로를 걷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핸들러의 슬쩍 붉어진 눈시울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는 한 번도 저 멀리 여행을 가보지 못하면서도, 나 같은 수많은 타인이 안전하게 일터로, 또 가족에게로 흘러갈 수 있도록 평생 기차역의 차가운 바닥을 다져온 존재였다.

보리를 만나기 전까지 내게 철도는 그저 '빨리 이동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시속 300km로 거침없이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보리와 같이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궤도를 묵묵히 지켜낸 무수한 파수꾼들의 '느린 걸음'이 바닥을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열차에서 내리는 내 발걸음은,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초조하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 그 느긋한 한 걸음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찰 임무를 마치고 플랫폼에 가만히 엎드린 보리. 녀석의 깊은 눈망울 위로, 저 멀리 어둠을 뚫고 역으로 진입하는 또 다른 열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은하수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던 기차가 임무를 다하고 정비창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리의 선로 위 삶도 오늘, 가장 아름다운 종착역에 닿아 있었다.

내일부터 보리는 차가운 철길 소리와 매연 가득한 대합실 대신, 푸른 잔디밭 위를 마음껏 달리는 진짜 '반려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준 늙은 파수꾼, 보리. 녀석의 마지막 퇴근길을 바라보며, 나 역시 내 삶의 속도를 조금은 늦추고 주변의 소중한 풍경들을 찬찬히 돌아보리라 다짐해 본다. 속도를 늦춘 열차의 창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같은 저녁노을이, 마침내 퇴근길에 오른 나와 보리의 발밑으로 따스하게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20000

작가의 이전글지금 일본에서 박근혜 초열풍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