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 속 파수꾼
스마트폰 화면을 켤 때마다 시간은 내 마음도 모른 채 빠르게만 흘러갔다. 대전에서 열리는 오후 미팅 시간에 늦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한 날. 마음이 급해서인지, 서울역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마저 유난히 느리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늘 그랬듯 내 삶은 마감 시한과 스케줄러의 촘촘한 칸막이 속에 갇혀 있었다.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식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앞사람의 뒤꿈치만 바짝 쫓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오직 '정시 도착'과 '속도'만이 내 하루의 유일한 가치였던, 그저 평범하고 초조한 온라인 게임인의 아침이었다.
그때였다. 내 시선이 앞사람의 구두 뒤꿈치를 벗어나 에스컬레이터 끝자락에 머문 것은, 승강장 진입로 한구석에서 커다란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아주 잠깐 주저앉았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일어서고 있었다. 젊은 시절 같았으면 날렵하게 뛰어내렸을 그 철제 계단이, 늙은 개의 단단했던 앞다리에는 오늘따라 유독 가파르고 미끄러웠던 모양이다. 주황색 형광 조끼에 새겨진 '철도경찰'이라는 네 글자, 그리고 희끗희끗해진 주둥이 주변의 털이 대합실의 차가운 불빛을 받아 쓸쓸하게 빛났다. 올해로 여덟 살,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을 훌쩍 넘긴 철도 탐지견 보리의 마지막 순찰을 그렇게 나는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지금 열차 내 보안검색 및 순찰이 진행 중이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놀라지 마시고……."
익숙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보리는 언제 주저앉았냐는 듯 귀를 쫑긋 세우며 핸들러의 발에 보폭을 맞추었다. 마침 내가 타야 할 KTX 열차의 문이 열렸고, 보리와 핸들러 역시 그 좁은 열차 통로 안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왔다. 객실 안은 나처럼 출장길에 올라 노트북을 켜는 온라인 게임인들,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차창 밖 세상이 시속 300km의 속도로 어지럽게 뒤로 밀려나기 시작하자, 객실 안의 공기도 목적지를 향해 흐르는 초조함으로 팽팽해졌다.
그러나 오직 내 옆자리를 지나가는 이 늙은 개만이 그 엄청난 속도의 소용돌이 중심인 듯 가장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보리는 흔들리는 열차 바닥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네 발에 잔뜩 힘을 준 채, 승객들의 발밑과 가방 구석구석을 다정하게 돌아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기차 안에는 고향 집 어머니의 반찬 냄새, 어느 여행객의 설레는 향수 냄새, 고단한 출장길의 씁쓸한 담배 냄새까지 수많은 이들의 삶이 향기로 섞여 흐르고 있었다. 보리는 그 일상의 냄새들 사이에서 행여나 숨어 있을지 모를 단 하나의 위험을 찾아내기 위해 온 신경을 코끝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어서...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