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성의 안락함을 벗어나 내 삶의 주도권을 가다듬는 지혜
"부장님, 말씀하신 자료 정리 다 끝냈습니다. 이제 뭐 하면 될까요?"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수고했어, 거기 두고 가"라고 답하면서도, 서류가 탁상 위에 툭 올려지는 소리 뒤로 씁쓸한 여운이 남던 날들이 있다.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수많은 계절을 보내며, 나는 여러 동료와 후배들이 일터를 대하는 모습을 곁에서 조용히 관찰해 왔다.
그중에는 유독 '시키면 시키는 딱 그만큼만' 지혜롭게(?) 해내는 이들이 있었다.
지적받거나 손해 보지 않을 선까지만 딱 움직이고, 추가적인 고민이나 제안은 '내 몫이 아니'라며 명확하게 선을 긋는 모습. 그들은 스스로를 영리하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업무를 떠안지 않고 적당히 에너지를 배분하는 것이, 치열한 조직 생활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현명한 처세술이라 여겼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이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깨달은 안타까운 진실이 있다. 시키는 일만 딱 해내는 그 수동성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가장 먼저 깎아먹는 가장 위험한 함정이라는 사실이다.
지시 사항만 기계적으로 이행하는 사람은 결국 '언제든 누구로 대체해도 상관없는 부품'으로 남게 된다.
일을 대할 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주체적인 고민을 생략하는 순간, 그 사람의 노동은 가치 있는 '작업'이 아닌 단지 버텨내야 할 '노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태도가 수년간 쌓이면 무서운 결과가 찾아온다. 조직에 변화의 바람이 불거나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수동성에 안주하던 이들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더 큰 비극은 일터에서의 수동적인 습관이 삶 전체로 스며들어,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조차 스스로 판단하고 바카라임지지 못하는 '주도권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동기나 까마득한 후배들이 먼저 앞서 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담담히 바라보며 오랜 시간 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화려한 승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정년까지의 아름다운 완주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맡겨진 업무를 '시키는 대로만' 대충 처리하지는 않는다.
높은 직급과 화려한 타이틀만이 성공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공은 내게 주어진 작고 소소한 업무 하나라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정성껏 다루며, 그 안에서 나만의 가치와 보람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민하고, 작은 부분이라도 스스로 개선해 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비로소 일의 진짜 재미가 생겨난다. 남의 지시에 의해서만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늘 피곤하고 지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똑같은 시간을 쓰고도 삶의 동력을 얻는다. 일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이 피어나는 법이다.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순히 달콤한 월급과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을 교환하는 거래가 아니다. 그 시간은 내 인격을 다듬고, 내 안의 잠재력을 꽃피우며, 세상에 작게나마 기여하는 소중한 삶의 과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딱 시키는 만큼만 하고 말지 뭐"라며 마음의 문을 닫고, 수동적인 태도로 고단한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이가 있다면 나지막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남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이는 타인의 인생을 빌려 살지만, 한 걸음 더 고민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남이 그려준 도안에 색칠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조금만 거두어보자. 내 일과 삶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정성을 다할 때, 당장의 화려한 대가가 따라오지 않더라도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당신만의 진짜 숙련됨과 깊은 평온이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자신의 자리를 단정하게 지켜낸 당신의 삶에, 이 소소한 글귀가 따뜻한 응원과 자그마한 쉼표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