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시선 신경 쓰느라 소중한 날들을 날려버린 세월

타인의 무대 위에서 조연으로 살았던, 지난날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by담연

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깔끔하게 다려 입은 와이셔츠, 정갈하게 매어 둔 넥타이. 지난 30여 년간 대기업이라는 팍팍한 조직 안에서 매일같이 입어온 나만의 ‘갑옷’이다.

돌이켜보면 내 청춘의 대부분은 그 갑옷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염려하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렇게 행동하면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을까?', '남들만큼은 살아야 번듯해 보일 텐데.'


타인의 시선이라는 정체 모를 평가관이 내 삶의 관람석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무대 위에서 내가 원하는 연기가 아닌, 남들이 손뼉 쳐 줄 만한 연기를 하느라 늘 가빠진 숨을 내쉬고 있었다.


관객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20대와 30대의 나를 지배했던 가장 큰 착각은 '세상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옷을 브랜드 이름 때문에 사 입었고, 내 형편에 과분한 차를 몰며 겉모습을 부풀렸다. 회식 자리에서는 내 진짜 의견을 숨긴 채 타인의 기분에 맞춰 웃어 넘기기 일쑤였고, 혹여나 조직에서 튀거나 뒤처질까 봐 밤잠을 설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숙제였다.


하지만 50대의 길목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깨달은 허망한 진실이 하나 있다. 내가 그토록 신경 썼던 무대 밖의 관객들은, 사실 나를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삶의 짐을 짊어지느라 바쁘다. 남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오늘 회의에서 무슨 실수를 했는지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길어야 몇 분 만에 사라진다. 세상은 나에게 그리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은 '타인의 실제 시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지레짐작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내 마음속 감옥'이었던 셈이다.


내 삶의 주권을 타인에게 넘겨준 대가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며 살았던 세월이 남긴 것은 결국 '지독한 허기짐'이었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 집을 사고, 직급을 올리고, 번듯한 모습을 갖추어갈수록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텅 비어갔다. 정작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형태'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나는 단 한 줄도 답을 써 내려가지 못했다.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가꾸느라 정작 내 안의 진짜 나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소중한 청춘의 날들은 그렇게 스쳐 지나갔다. 정작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눈빛을 깊이 담아줄 시간, 내가 좋아하는 작은 취향에 몰입할 시간,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에너지'로 탕진해 버린 것이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부질없고 아까운 세월이었다.


비로소 내 무대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법

만약 과거의 나처럼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오늘 하루도 마음 졸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먼저 길을 걸어온 인생 선배로서 이 말을 꼭 건네고 싶다.


"남들의 박수에 목말라하지 마라. 그들은 당신 인생의 입장권을 사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세월의 찌꺼기를 하나둘 털어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미워할 사람은 미워하고, 내가 어떠한 모습이든 나를 아껴줄 사람은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준다는 것을. 그러니 세상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타인의 기대를 다 채워줄 이유도 없다.


이제 나는 정장 대신 편안한 옷을 입고, 남들의 평가 대신 내 안의 평온을 먼저 챙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망설였던 소소한 도전들을 하나씩 시작하며, 비로소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당신의 오늘은 타인의 시선에 바치기엔 너무나도 고귀하고 짧다. 남의 눈에 어여쁜 사람이 되려 애쓰기보다, 오늘 밤 나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도 참 잘 살았다"라고 다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수많은 날을 날려버린 끝에 내가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비밀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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