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현상을 이론으로 만든다

아내와 나의 싸우는 이유를 생각했다.

by박제

가만 보면 나는 모든 현상을 몇 가지 설명 가능한 이론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좋게 말하면 생각이 복잡하고 깊은 편이다.


내가 그렇다는 걸 알게 된 건 아내와의 싸움, 그리고 서로 다른 성격의 원인을 생각해 보면서부터였다.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토요일 밤, 아내와 딸아이는 자기 전에 말랑이가 나오는 영상을 함께 봤다. 영상을 보면서 아내는 딸아이가 말랑이를 좋아한다고 느꼈고, 본인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천호동에 있는 완구점에 가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런데 다섯 살 우리 딸아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나 보다.


마찬가지로 토요일, 집 근처 다이소에 있는 뽑기 기계에서 말랑이를 뽑았는데 딸아이는 오늘도 거기에 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완구점에 가자고 하니 안 간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게다가 딸아이는 요즘 차를 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 차를 바꾼 뒤부터 새 차를 타면 약간 멀미를 하는 듯했다. 힘들고 불편한 느낌이 있나 보다.


“그럼 지하철 타고 갈까?”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차를 타기도 싫고, 결국 그냥 가기 싫다고 했다.


나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가지 말까?”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이런 걸 언제까지 다 들어줄 거야? 가야 할 때는 가야 한다고 해야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고 체계가 작동했다.


‘그런데 완구점에 가는 것도 결국 아이를 위해 가는 거 아닌가?’


아이를 위해 가는 곳인데 정작 아이가 싫다고 한다면,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동네 키즈카페도 있고 놀이터도 있다. 차를 타지 않고도 아이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선택지는 충분히 많다.


물론 부모가 결정한 일을 아이가 따르지 않을 때마다 계획을 바꿀 수는 없다.


훈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기로 했으니 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완구점에 가려던 것뿐이다.


그런데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걸 하면 되지 않을까.


선택지가 하나뿐인 상황이라면 아이를 설득해서라도 가야 한다. 하지만 여러 선택지가 있고 그중 무엇을 골라도 큰 문제가 없다면, 굳이 아이가 싫어하는 선택지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가만 보면 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지금 가능한 선택지를 머릿속에 펼쳐 놓는다.


각각의 선택을 했을 때 생길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른다.


어쩌면 이것이 내 사고 체계인 것 같다.


하나의 상황을 단순히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야 한다’로 나누기보다, 그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을 먼저 생각한다.


아내와 말다툼이 자주 생기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아내는 지금 정한 것을 어떻게 실행할지를 생각하고, 나는 지금 정한 것이 정말 최선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아내에게는 내가 이미 결정한 일을 자꾸 뒤집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반대로 나에게는 아내가 굳이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고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단지 생각이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다.


이런 식으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나는 또 우리의 성격 차이를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하고 있었다.


참 나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일요일.


우리는 결국 아내가 원했던 대로 완구점에 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면서도, 결국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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