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는 러브호텔?

베란다의 보랏빛 불을 켜는 마음

예전에는 화분을 사는 일을 꽃다발을 사는 일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예쁜 화분 하나를 들여와 한두 달 바라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꽃다발을 사서 화병에 꽂아두고, 꽃이 시들면 보내주는 것처럼 화분도 그렇게 생각했다. 잘 자라면 좋고, 시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식물이 죽어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또 예쁜 식물을 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화분 속 식물은 꽃다발과 달랐다. 이미 잘린 꽃이 아니라,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새잎을 만들고 빛을 향해 자라는 생명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식물들이 떠올랐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인 다육이도 있었고, 햇빛이 부족한 줄 모르고 웃자라게 둔 식물도 있었다.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는 줄도 몰랐다. 나는 그저 물만 주면 식물을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아팠다.


몰라서 죽였다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한동안 식물을 사지 않았다. 또 데려왔다가 죽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요즘 다시 식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늘은 교회에서 가지치기를 했다. 몬스테라의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마디와 공중뿌리를 확인했고, 파키라와 무늬벤자민, 뱅갈고무나무도 삽목 할 수 있도록 가지를 정리했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길게 자란 가지를 대충 꺾거나, 시든 잎만 잘라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어디를 잘라야 다시 자랄 수 있는지 살폈고, 잘린 가지에도 마디가 있는지 확인했다. 버려질 뻔한 가지들은 물병 속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가지치기를 하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잘라낸다는 것은 꼭 없애는 일이 아니었다.


위로만 길게 뻗은 가지를 잘라주면 그 아래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오고, 잘려 나온 줄기 하나도 조건만 맞으면 또 다른 식물이 된다. 잘라냄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오늘은 식물도 다섯 화분이나 새로 데려왔다. 당근 이웃에게서 데려온 작은 식물들이었다. 집에 가져와 한자리에 놓고 보니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이름을 하나씩 알아보고, 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빛은 얼마나 필요한지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었다.


집에는 빈 화분도 많다.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토분이며 작은 화분이며 차곡차곡 쌓아두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우습다. 그런데 그 화분을 볼 때마다 버려야겠다는 생각보다 무엇을 심으면 좋을지가 먼저 떠오른다.


커다란 둥근 토분에는 제라늄을 심고 싶다. 제라늄은 꽃대 하나가 지면 또 다른 꽃대가 올라오는 재미가 좋다. 유럽 토분에 심어 놓으면 별다른 장식 없이도 그 자체로 예쁘다.

흰색으로 리폼해 둔 오래된 나무 사과상자에는 작은 율마를 몇 그루 심어도 예쁠 것 같다. 율마는 작은 포트 하나를 오래 키워 큰 나무처럼 만들어본 기억이 있다.

로즈마리도 다시 키우고 싶다. 손끝으로 살짝 스쳤을 때 퍼지는 향을 맡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식물이니까.


그리고 요즘 가장 마음을 쓰는 식물은 보스턴고사리다.


아침이면 먼저 들여다본다. 잎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습도가 부족하지 않은지 살핀다. 물을 주는 것도 이제는 날짜를 정해두고 하지 않는다. 흙을 보고, 잎을 보고, 식물마다 다른 성향을 생각한다.


베란다 한쪽에는 햇빛이 부족한 다육이들을 위해 식물조명등도 켜두었다. 저녁이 되면 베란다는 보랏빛으로 물든다. 식물을 살리려고 켜둔 조명인데, 밖에서 보면 분위기가 꽤 묘하다.


어느 날 아들이 밖에서 베란다를 보더니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베란다 러브호텔 같아.”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저녁이면 보랏빛을 내는 베란다가 조금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불을 끌 수는 없었다. 다육이들이 그 빛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 우리 집 베란다는 보랏빛이다. 그 안에는 조금이라도 더 잘 자라 보려는 식물들이 있고, 그 식물들을 살리겠다고 조명을 켜는 사람이 있다.


다시 식물을 좋아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이번에는 한두 달 예쁘게 보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계절을 함께 지나고 싶다. 새잎이 나오는 것도 보고, 가지가 굵어지는 것도 보고, 꽃이 피었다 지고 다시 꽃대가 올라오는 것도 보고 싶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식물을 잘 키운다는 것은 많이 주는 일이 아니었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에게는 물을 주고, 마르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식물에게는 기다려준다. 햇빛이 부족하면 빛을 더해주고, 위로만 길게 자라면 적당한 자리에서 잘라준다. 내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식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이다.


나는 지금, 오래 잊고 있었던 식물을 키우는 기쁨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밤마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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