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이 커질 때면

그가 누렸을 눈부신 시절

by하얀 나비

젊은 날 ​남편과 다투거나 삶의 어떤 한계에 부딪힐 때면, 나는 가만히 과거의 기억을 들추어 봤다.


​동료가 가져온 오십 장쯤의 부산지점 직원 사진들 중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내 눈에 들어왔던 반듯한 얼굴의 사내. 그가 바로 내가 고른 사람이었다.


빛바랜 사무실 풍경 속에 담긴 모습은 하나같이 초라했다. 모두 부산 사람인 줄 알았건만, 남편만은 홀로 서울에서 내려온 이였다. 생전 처음 집을 떠나 하숙집 밥을 먹으며 살이 내릴 대로 내린 탓에, 그저 남들과 다름없는 초라한 직원의 모습으로 사진 속에 있었다.


​그러나 서울로 발령이 나고 결혼 전 까지의 그의 삶은 풍요 그 자체였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며 자기 월급은 온전히 용돈으로 썼고, 부모님의 차를 끌며 부모님이 사주시는 백화점 옷과 최고급 맞춤 양복을 입었다.


말단 사원이면서도 임원들보다 근사한 옷을 입고 좋은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다니다가 윗분들과 자주 마주치곤 했다는 말들은, 그가 얼마나 여유롭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부족함 없는 세상에서 그가 지내며 돈을 한 푼도 저축하지 않았고 나를 만나는 석 달간 불고기를 사주느라 돈을 다 쓴 탓에 결혼할 당시 그의 재산은 명품 카메라와 기타가 전부였다.


​결혼 비용과 신혼여행, 잠실 아파트 비용을 모두 부담하신 것을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지원은 멈추었고, 남편은 작고 소박한 월급으로 나와 함께 살아가야 했다. 갑작스럽게 그가 감당해야 했을 현실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비빌 언덕마저 없는 나와 손을 잡으면서 남편이 잃은 것은 너무도 많았다. 그토록 다정했던 어머니의 품마저, 며느리의 외로운 처지를 알게 되시고, 그런 며느리와의 갈등까지 생기면서 차갑게 닫혀버렸으니까.


​남편은 나와 결혼함으로써 내가 서 있던 그 쓸쓸한 높이까지 내려와 주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더 좋은 환경의 여자를 만났더라면, 그 풍요를 누리며 내내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이 불쑥 고개를 든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욕심이 고개를 들 때, 남편과 다투어 야속한 마음이 극에 달할 때면, 나는 결혼 전 그가 누렸을 눈부신 시절을 생각한다. 나를 위해 기꺼이 내려와 준 그의 삶을 기억하며,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조용히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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