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화
나는 너를 잘 알아. 누군가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신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인간인데 어떻게 타인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인 의지이다. 이 의지는 끊임없는 욕망과 불만으로 표현된다. 인간이 겪는 고통과 불만족은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은 나의 취향이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인간 본성의 근본적 요소와 마주하는 행위인 것이다.
자기 인식의 여정은 결국 해탈로 이어진다. 자신의 본성과 욕망을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한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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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독화살을 맞아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가 황급히 달려와 화살을 뽑으려 하자, 그 사람은 의사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요! 이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의 신분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화살은 어떤 나무로 만들었고, 화살촉에 바른 독의 성분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그걸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겠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독이 온몸에 퍼져 죽고 말았다
우리는 종종 '나를 아프게 한 타인의 속마음'을 알아내려 애쓰거나, '세상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외적인 이유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고통의 근원은 결국 내 안의 욕망과 불만족이다.
타인을 분석하고 원망하는 '외부의 화살'에 집중하기보다, <지금 내 마음에 어떤 욕망과 집착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가?>를 먼저 들여다보고 그 화살을 뽑아내는 것이 자기 인식의 시작이다.
노자는 진정한 자기 인식과 평화에 대해 '진흙으로 만든 그릇'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이 쓸모가 있는 것은 그릇 내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문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방이 방으로서 구실을 하는 것은 그 방 안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릇 안에 무언가를 채우려고만 한다. 지식, 명예, 물질, 그리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릇의 본질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을 때가 아니라,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상태가 된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불필요한 욕망에서 벗어나 이르는 진정한 평화'는 노자가 말한 '비움'과 맞닿아 있다.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내 안에 새로운 취향이나 욕심을 끊임없이 채워 넣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집착과 불안을 한 꺼풀씩 벗겨내어, 내 영혼의 빈 공간(평온함)을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비워질 때, 비로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품이 생겨난다.
타인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것에 불과하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해탈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