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줄리아'(2화)

꿈에도 못 잊을 친구야

by하얀 나비
산바카라길

목포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른 친구와 커피숍에 있는데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대여섯 명의 검정 잠바를 입은 꾀죄죄한 남자애들이 우릴 자꾸 쳐다봤다.

그리고 그중의 한 명이 다가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고 그들은 멋쩍은 듯 하더니 잠시 후 커피숍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내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야 쟤들 다 서울대학교 학생이야"

나는 서울대학교 배지도 본 적도 없었지만 친구는 그걸 알고 있었다.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나의 무지함이여...


그런데 ​열몇 명쯤 되어 보이는 서울대 졸업반 학생들은 하나같이 인물도 훤칠하고 좋았다.


하지만 내 친구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다가왔던 그 남학생은 이내 커다란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야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이 같은 동성동본이었던 것이다.


​지금에야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 시절에는 결혼은커녕 교제조차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엄격한 시대였다.


​그렇게 허탈한 얼굴로 물러서는가 싶던 그 남학생은, 방향을 틀어 나에게 대시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옆에서 “둘 다 좋다는 거냐?”라며 짓궂게 놀려대기도 했다. 내 친구 그녀도 저 학생 진짜 괜찮아 보인다며 거들었다.


​부산에 집이 있다는 그는 집안도 대단하고 청춘의 패기가 넘치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그릇이 작은 나는 결국 한계를 느껴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깜짝 서프라이즈 같았던 만남 덕분에, 우리의 목포 여행은 청춘의 낭만과 추억을 다 갖춘 완벽한 여행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이번에는 그 친구와 함께 강원도에서 군 복무 중이던 나의 오빠를 면회하러 갔다. 역시 허름하고 무서운 모텔에서 부실해 보이는 문짝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두 어린 여자가 군대 사무실에 들어서며, 우리는 그야말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오빠도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날의 후유증은 오빠가 제대할 때까지 꽤 오래갔다. 군인들이 휴가를 나올 때마다 내게 계속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나는 오빠의 군 생활을 위해 얼굴도 잘 모르는 군인들을 번갈아 만나 커피를 마셔 줘야만 했다. 그 만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우리 오빠 좀 잘 부탁합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우리 대학에 가자” 누가 먼저 말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회사와 가까운 서울보건전문대학에 나란히 입학해, 언제나 맨 앞줄에 앉아 악바리처럼 수업을 들었다.


가끔 교수가 사정이 생겨 휴강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이처럼 신이 나서 학교 근처 분식집으로 달려가 함께 라면을 사 먹곤 했다.


​회사 일이 끝나고 야간에 대학을 다니는 고단한 일과였지만, 그녀가 곁에 있었기에 그리 힘든 줄 몰랐다. 그녀와 함께라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사내 배당주가 나왔다며,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주식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지분을 얼마간 나에게 사게해 주기도 했다. 훗날 내가 결혼할 때쯤 그 주식은 거짓말처럼 두 배가 넘게 올랐고, 나는 그것을 팔아 요긴하게 혼수를 장만했다. 만약 팔지 않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아주 큰돈이 되었을 테지만, 그 시절엔 그 주식이 내 결혼의 가장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대학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과 동시에 결국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휴학계를 던졌지만, 그녀는 끈기 있게 학업을 이어가 끝내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내가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난 후, 그녀도 마침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의 늦은 유학 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나 그녀의 고생길이 시작되면서, 우리의 긴 이별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남편이 박사 학위를 따기까지 걸린 8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그녀가 귀국하고 딱 한 달 뒤에 이민을 말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가져왔다던 귀한 기계로 그녀가 정성껏 내려준 따뜻한 라테 한 잔. 그녀의 집 거실에서 마셨던 그 커피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캐나다로 이민을 온 초기에는 몇 번 전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낯선 타국 땅에서 이사를 거듭하는 와중에, 그녀의 연락처와 그녀 언니의 번호까지 꼼꼼히 적어두었던 소중한 수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온 집안을 아무리 뒤져도 수첩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사를 하며 내 전화번호마저 바뀌어버린 탓에, 이제는 서로를 찾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끊어져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에 이름을 몇 번이고 검색해 보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제 나만의 ‘줄리아’.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보석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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