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 (3 최종화)

"잔인한 밴쿠버의 봄 "

by하얀 나비

봄이 오고 있었다.

밴쿠버의 봄은 계절이라기보다 공기의 변화에 가까웠다. 비 내리는 날이 조금 줄었고 봄비는 겨울의 빗물과는 향기가 조금 달랐다.

차갑게 가라앉던 습기 대신 어딘가 느슨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유나는 다운타운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사람들이 얇아진 코트를 입고 지나갔다. 테라스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보였다. 아직은 조금 이른 날씨였지만, 도시는 이미 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유나는 손에 쥔 커피잔을 휘청했다.

길 건너편에 그가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들과 함께였다. 열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키가 훌쩍 커 있었고, 그의 옆에서 계속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유나는 그의 웃는 얼굴을 두 번째 보는 것이었다.
우편물을 찾으러 왔던 날에도 살짝 웃었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있는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아이가 뭐라고 투덜거리자 그는 웃으며 아이 모자를 바로 씌워주었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기도 했다.
아이는 금세 기분이 풀린 얼굴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유나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유나는 한 번도 그를 옆에 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머물렀던 풍경을 좋아했던 것 같다.

비 오는 저녁의 유리창,
회색 도시,
조용한 말투,
높은 층의 적막,
잠시 스쳐 지나가던 어떤 외로움.

그는 그 풍경 속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사람처럼 서 있었을 뿐이다.

그는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다가 카페 안의 유나를 발견했다.
아주 잠깐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놀란 듯했지만 천천히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유나도 따라 웃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유나는 끝내 카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식어가는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창밖에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밴쿠버의 비는 사람을 붙잡지 못한다. 다만 아주 오래, 잊히지 않는 냄새처럼 남을 뿐이다.


●□●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Thetis is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