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없으면

비틀린 나무가 남긴 거대한 그늘과 삶의 맞바람

by하얀 나비
동네에 어느집


궁핍, 고난, 고통, 노력의 좌절…

삶에서 가급적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단어들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뼈와 살이 제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적당한 압력으로 잡아주고 있는 기압에 기대어 살아간다.


어린아이 일 때도 유치원에 가기 싫은 이유는 존재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출근하기 싫은 이유는 존재한다.

상황이 달라져도 고난은 항상 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는 것이고 어른은 어른의 고통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상황 어떤 위치 어떤 나이에 상관없이 늘 그 순간만 느낄 수 있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궁핍, 고난, 고통, 좌절과 같은 것들도 우리의 삶에서 적당한 대기의 압력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한 것들이 없으면 행복하기는커녕 우리는 우리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없다고 해서 정말로 사람이 터져버리진 않겠지만 오만함이 늘어나 이런저런 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이, 그야말로 ‘폭발'해버리고 말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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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 고생 끝에 편히 놀며 인생을 산다면 행복할 것이다. 지난날 고생했던 기억이 끊임없이 작용하여 지금의 행복을 더 높이 띄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런 결핍 없이 먹고 놀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 백 년의 인생은 과연 행복할까? 의료기술이 발달해 백 년의 삶이 이백 년으로 늘어난다 해도, 매일이 '무풍지대'라면 그 삶은 지옥과 다름없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편안하게 사느냐’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압력(고난)을 어떻게 삶의 동력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 월요일 출근길의 무거운 발걸음은 역설적으로 다가올 주말의 달콤함을 완성하는 필수 조건이며, 오늘 흘린 땀방울은 지루할 수 있는 이백 년의 삶에 생동감이라는 색깔을 입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삶의 무게는, 내가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대기가 나를 꼭 붙잡아주고 있다는 따스한 신호다


만약 삶에 아무런 고통도, 학교나 온라인 게임 같은 의무(저항)도 없다면 우리는 바람 없는 날의 연처럼 바닥에 추락해 뒹굴게 될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리가 마주하는 매일의 출근길과 자잘한 스트레스는, 사실 우리가 삶이라는 하늘에 계속 떠 있게 만들어주는 맞바람인 셈이다.


​동양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이야기 중에는 고난과 결핍을 바라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주는 우화가 있다. 한 목수가 제자들과 길을 가다 아주 거대하고 오래된 가업나무(추목)를 보았다. 목수는 쓱 훑어보고는 "이 나무는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가구를 만들면 부서지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악목(惡木)이다"라며 지나쳤다.


​하지만 그날 밤, 그 나무가 목수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다른 나무들처럼 곧고 재질이 좋아 인간들에게 '쓸모'가 있었다면, 진작에 도끼에 찍혀 베여 나갔을 것이다. 내가 이리 비틀어지고 결점(고난과 결핍)이 있었기에,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아 이렇게 천수를 누리며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굽은 솔(소나무)이 선산을 지킨다는 조선 속담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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