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수성의 파편 지대에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채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태양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암석들 사이로 검은색 무인 시추선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다이아몬드 드릴이 암석의 표면을 파고들었고, 기계팔에 장착된 수집 장치들은 잘게 부서진 코어리움 결정을 회수해 선체의 보관함으로 옮겼다.
노라는 통제실의 지정 좌석에 앉아 텅 빈 표정으로 시추선들의 작업 현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함장실에서 로쉬와 대화를 나눈 이후, 좀처럼 머릿속이 개운해지지 않았다. 근무에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문득문득 그의 말들이 떠오르곤 했다.
'인간은 변하지 않았네, 노라.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이 달라졌을 뿐이야.'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노라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작게 중얼거린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업무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한 차례의 채굴 작업이 끝나고 있었다.
“시추선 전 기체, 채굴 작업 종료 확인. 복귀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노라의 보고에 통제실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인한다. 전 기체 복귀시켜.”
노라는 시추선들에 귀환 명령을 전송했다.
작업을 마친 무인 시추선들이 하나둘 드릴을 접고 암석 표면에서 떨어져 나왔다. 선체 곳곳에 장착된 자세 제어 추진기들이 짧은 분사광을 내뿜으며 방향을 전환했고, 시추선들은 정해진 귀환 경로를 따라 코라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라는 탐사선 외부 카메라 영상을 보며 각 기체의 상태와 복귀 모습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1번 복귀 경로 진입. 2번 정상. 3번...”
그의 시선이 화면 위에서 멈추었다.
파편들 사이로 펼쳐진 검은 우주 공간. 그 너머에서 희미한 푸른 빛 하나가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처음에는 어느 시추선의 추진기가 분사한 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빛은 채굴 장비들의 이동 방향과 전혀 다른 궤적으로 빛의 꼬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뭐지...?”
노라는 무심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화면을 확대했다.
그러나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기도 전에 푸른 섬광을 뿜어냈던 물체는 거대한 암석 뒤편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화면 아래쪽에서 또 하나의 검은 형체가 튀어나왔다. 후방에서 새어나오는 옅은 붉은 빛이 없었다면, 검은 우주의 배경 속에서 그 물체를 식별하지 못했을 터였다. 어둠과 구별하기 어려운 그 작은 물체는 암석 사이를 날카롭게 가로지르더니, 조금 전 푸른빛이 사라졌던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노라는 황급히 영상을 되감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통제실 전체에 짧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삐잉—! 삐잉—!
중앙 화면에 표시되어 있던 채굴 정보가 일제히 축소되고, 그 자리를 붉은색의 경고 문구가 대신했다.
「비상 통제 절차 개시. 통제 권한 이관」
“어...?”
노라가 고개를 들었다. 통제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
선임 승조원들은 서로 짧은 지시를 주고받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통제실장은 어딘가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원 주목!”
그의 목소리가 통제실에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임무 통제권이 상위 지휘부로 이관된다. 해군 소속이 아닌 승조원들은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지정된 숙소로 복귀하도록.”
노라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실장님, 방금 외부 카메라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영상 확인이 필요합니다.”
“됐어. 지금은 지시대로 행동해.”
“하지만 제가 관측한 물체가—”
“노라 그린비.”
통제실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현재 상황에 관한 추가 보고는 필요 없다. 해당 기록은 상위 통제부에서 확인할 거야. 자네는 즉시 복귀하게.”
노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통제실의 중앙 출입문이 기계음과 함께 열렸다. 문을 통해 제복을 입은 장교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어깨에는 하나같이 GU의 인장이 새겨진 해군 패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들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통제실장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더니 각자 지정된 좌석으로 향했다. 그들의 뒤로 군인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검은 제복에 낯선 방호 장비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노라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열려 있던 시추선의 외부 카메라 영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가 중얼거리자 소피가 조용히 대답했다.
“외부 관측 장비와의 통신이 일부 차단됐어. 시추선들의 영상 기록에도 접근할 수 없고. 통제 시스템의 권한이 전부 상위 지휘부로 넘어간 것 같아.”
노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 평범한 채굴 작업 중 발생한 비상사태치고는 지나치게 신속하고 조직적인 대응이었다. 무엇보다 선임 승조원들과 장교들은 이미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묻는다고 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노라는 단말기를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제실뿐만 아니라 다른 기능실에서 밖으로 나온 승조원들은 복도 한편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업무 중단과 숙소 복귀 명령에 당황한 것은 노라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무슨 사고가 발생했는지 궁금해했고, 누군가는 단순한 훈련이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야, 도대체? 왜 갑자기 일을 중단하라는 거야?”
“나도 몰라. 군 소속 간부들도 아무 말 안 해주던데.”
“반응로에 문제라도 생긴 거 아냐?”
“그랬으면 비상대피 명령이 내려왔겠지. 숙소로 돌아가라니, 이상하잖아.”
노라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손목 단말기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그 영상... 너도 봤어?”
“응. 일부만. 실시간 연동 중이었어서 일부 데이터가 내 쪽에도 남아 있어. 하지만 통신이 갑자기 차단되는 바람에 몇 개 프레임밖에 확보하지 못했어. 그걸로는 정확한 형상을 복원하기 어려워.”
“그래도 뭔가 있던 게 맞지?”
“확실히 있었어. 추진광으로 보이는 빛도 보였고. 그런데 우리가 쓰는 시추선의 추진 방식과는 달라 보여. 나머지는 정보가 부족해서 모르겠어.”
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복도 멀리에서 묵직한 금속성 소리가 들려왔다.
쿵!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던 연결 통로의 격벽이 열리고 있었다. 두꺼운 문이 양옆으로 천천히 물러나자, 그 안쪽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라는 그들을 향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노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승조원들도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군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누군가는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커다란 장비 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다.
곧이어 소형 무인 운반대들이 연결 통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에는 기다란 검은색 장비 상자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었다.
군인들은 복도 양쪽에 정렬한 뒤 익숙한 손놀림으로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고, 그 안에서 기다란 검은색 물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라는 눈을 크게 떴다.
“총...?”
그것은 분명 얼마 전 화물실의 폐쇄회로 영상에서 목격했던 그 물건이었다.
군인들은 총기를 꺼내 각자의 몸에 맞게 멜빵을 조정하고, 탄창과 부속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보조 무기까지 허리춤에 착용했고, 다른 이들은 방탄 보호구와 검은색 헬멧을 갖춰 썼다. 오랫동안 전쟁과 멀어져 있었던 인류의 탐사선에서, 군인들이 실전용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노라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주변의 승조원들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저거... 진짜 총이야?”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야. 소문이 사실이었나 봐.”
“혹시 탐사선 안에 반란군이 있나?”
승조원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군인들이 복도 양쪽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통제실과 연구 구역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주요 연결 통로의 출입구를 차단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장교가 승조원들을 향해 걸어왔다.
“전 승조원에게 알린다. 현재 함선 내부에 보안 통제 절차가 시행 중이다. 지정된 숙소로 즉시 복귀하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외출을 삼가도록.”
그는 손목 단말기의 화면을 확인한 뒤 덧붙였다.
“통제 구역의 출입은 전면 금지한다. 지시에 불응할 경우 군 규정에 따라 조치하겠다.”
승조원들 사이에서 다시 웅성거림이 일었다.
“잠깐만요!”
한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푸른색 제복을 입은 젊은 연구원이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임무 중에 갑자기 일을 중단시키더니, 이제는 군인들이 나타나서 숙소에 돌아가라니요. 적어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알려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장교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현재 상황은 보안 사항이다. 지시에 따르도록.”
“보안 사항이라고요? 우리는 이 함선의 정식 승조원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갇혀 있으라는 겁니까?”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정된 숙소로 복귀해.”
연구원이 그 말을 무시한 채 통제 구역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가까이 서 있던 군인이 팔을 뻗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
“비키세요! 저희 팀장님과 이야기하겠습니다!”
연구원이 군인의 팔을 밀어내려던 순간이었다. 무언가 둔기로 내리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노라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는 다른 승조원들과, 일부 여성 승조원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 뒤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목소리를 높이던 연구원은 어느새 얼굴을 감싸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선 군인의 총기 개머리판에는 선홍빛 피가 묻어 있었다.
순간 두려움이 섞인 정적이 흘렀다.
“통제 구역 접근 및 지시 불응 시 무력 사용 및 처벌이 가능하다. 해당 인원은 별도 인계한다.”
장교의 짧은 명령에 군인들이 남성을 붙잡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두 팔을 붙들린 채 고개를 든 그의 코와 입에서는 선홍빛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잠시, 그는 곧 군인들에게 이끌려 연결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노라는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연구원이 명령에 불응한 것은 사실이야.'
'비상상황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
노라는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쉽사리 이해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 비상상황인게 맞긴 한건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폭력을 사용해도 괜찮은건가?'
노라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질서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사용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침묵을 강요하는 것. 노라는 그것에 질서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노라는 쉽사리 현재 상황을 판단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의문보다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노라 혼자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 하나 쉽게 항의하지 못했다.
노라는 다시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제복, 얼굴을 가린 방호 장비, 차갑게 빛나는 총기. 과학과 탐사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어야 할 코라의 복도는 이제 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움을 통한 통제의 시설이 되어 있었다.
“노라.”
소피가 노라에게만 들리도록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어서 돌아가자.”
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승조원들도 눈치를 보며 군인들이 서 있는 통로를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평소라면 서로의 연구 성과에 대한 이야기나 가벼운 농담들로 가득 찼을 복도에는 승조원들의 무거운 발소리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