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군대는 혐오시설인가

by더블윤

지난 10월 3일에는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이 있었다. 당시 부대에서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나도 워낙 축구를 즐기고 관심도 많았기에, 아시안게임 결승전만큼은 시청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당직근무 때문에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응원하지는 못했지만, 문자 중계와 하이라이트 영상들을 보며 그 기분 좋은 우승의 순간을 축하했던 것이 불과 이틀 전의 이야기다.

경기가 끝났다는 소식을 접한 뒤, 함께 근무를 서던 부관과 주고받았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야, 우승까지 했네. 다들 군 면제 축하.”
“아, 그러고 보니 다 군 면제네요?”

혹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아닌 아시안게임 우승일 뿐이며, 결승 상대인 일본의 전력도 완전한 1군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그 이전에 한 명의 축구선수로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기 위해 흘렸을 땀과 인고의 세월을 폄하할 수는 없으리라.
게다가 한국 축구의 수준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요즘의 상황에서,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그 위상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 셈이기에 그들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군 면제 역시 마땅히 축하받을 만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랬었다.





대표팀의 주장인 이기혁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입대가 9일 남아 있었다고 설명한 뒤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고, 양민혁 선수는 병역 혜택이 이번 대회의 중요한 동기였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승수 선수는 금메달을 딴 뒤 ‘전역모’를 쓰고 경례한 사진을 SNS에 게시했다.
최우진 선수의 ‘절뚝이는 세리머니’는 논란을 더 키우는 데 일조했다. 최우진은 다리를 절며 걷다가 신발 속에 숨긴 금메달을 꺼내는 영상을 올렸다. 실제로는 최근 러닝·마라톤계에서 유행하는 완주 세리머니를 따라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불과 얼마 전 서부전선에서 지뢰 폭발로 장병들이 중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던 터라 일부에서는 이를 군 장병 사고와 연결해 받아들였다.
군에 몸담고 있는 나도 개인적으로 최우진 선수가 군 장병들을 비하할 목적으로 이러한 세리머니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그런 의도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장병들이 지뢰를 밟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는 현실을 애초에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병역 혜택을 철회시켜야 한다는 감정적인 의견에 동조할 마음은 없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있어 군입대라는 장애물 아닌 장애물이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히는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대표 체육인이 국제대회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금메달이라는 영예보다 병역 특혜라는 개인적 차원의 혜택에 머물러 있는 듯한 모습은 안타깝게 여겨질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게 된다.


입대 문제가 그대들의 성취와 명예보다 더 우선될 만큼 우리는 그렇게 혐오스러운 집단인가요?





지난 9월 21일. 서부전선 DMZ에서 적성 지뢰에 의해 아군 장병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국방부의 공식 입장 발표가 있었기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나를 비롯한 전우들은 이 사태를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DMZ에서 지뢰 제거 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폭발로 인해 다리가 절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것이 북한군의 지뢰일 것이라 확신했었다.
아군이 사용하는 지뢰 가운데 지표면하에서 폭발하여 신체 일부를 완전히 훼손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진 지뢰는 없으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6·25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M3 대인지뢰 정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색로 대부분이 이미 지뢰 제거와 개척 작업을 마쳤다는 점을 생각하면, 6·25 전쟁 당시 사용되던 지뢰가 유기된 채 남아 있다가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M3 대인지뢰. 현재는 사용하지않는 구형 지뢰.


폭발로 인해 발생한 중상자 2명과 부상자 1명은 모두 군 간부이다. 그중에는 수색대대의 대대장도 포함되어 있다. 대대장인 중령의 나이는 대략 40대 초중반일 테니, 아마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 그리고 아버지였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지대에서 부여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며 한 가정의 한 축의 기둥이었던 그는 이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군인이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그가 원망의 화살을 국가와 국민을 향해 겨눌 리는 만무하다. DMZ의 사선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작전에 임하는 것은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같은 각오였을 테니 말이다.
그 작전에 참여한 모두가,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하고 누구 하나 인정해 주지 않는 통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늘 해왔던 일을 해왔을 뿐이다.
원망을 한다면, 그 길에 심어져 있던 누군가의 악의를 향해있을 것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적지 않은 수의 청년들에게 군을 대변하는 표현은 ‘탈출(전역)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다. 군 간부의 이탈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고, 아직 군에 입대하지 않은 청년들이 군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멍청한 집단이라는 인식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진심으로 애통하게 여기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 국민 중 일부, 심지어는 우리 군 내부의 장병들 중 일부조차 우리 군을 기피해야 하는 조직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 군은 무엇을 먹고 자라나는가?


인류의 역사를 보았을 때, 군대란 국가 이전부터 존재했던 가장 오래된 조직체 중 하나였다. 그 조직의 핵심을 이루는 가치는 규율이나 무력과 같은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보호에 있었다. 실로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존재했던 조직이었던 셈이다.
군대가 가진 무력은 보호의 방패이자 공동체의 권익을 위해 존재해 왔다. 군대가 가진 엄격한 규율과 질서는 그 무력을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존재했다.
물론 군대가 가진 무력이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향했던 것은 아니지만, 군대의 존재 목적은 언제나 보호라는 큰 가치를 향해 있었다.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
— 군인복무기본법 제5조 제1항

국군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 유지에 이바지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 군인복무기본법 제5조 제2항


그래서 우리 군은 무엇을 먹고 자라나는가?


누군가는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말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을 그 어떤 가치보다 명예롭고 숭고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험지로 나아가는 것, 밤을 새워가며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 훈련에 임하는 것 역시 몇 푼의 금전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임하는 이들이 있다.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개척자들의 발걸음에는 위험수당에 대한 계산 이전에 전우를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이 담겨 있다.


이들은 무엇을 보상으로 여기는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없는 군대는 죽은 군대이다.
그 사기를 유지할 수 없고, 군의 존재 목적과 사명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그 신뢰를 얻기 위해 만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지만, 가장 견고한 방패는 안과 밖이 동시에 두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주변에서, 또는 세상에서 물질적인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흔들리지 않는 이들이 이 조직에 남아 있다. 그들은 멍청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누군가는 지켜야 하기에 두세 사람의 몫을 해나가며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버티게 만드는 것은 물질적 처우가 다가 아니다. 오히려 열악한 처우 속에서도 그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힘은 따로 있다.
신뢰와 지지.
그 보이지 않는 영양분이 그들의 밥줄이자 긍지이며, 명예와 신념이 된다.




대표팀의 가슴에 태극기가 놓여 있듯,
내 전투복 어깨에도 태극기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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