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다고 부처님이 가르치셨는데 그 무상이 실재함을 퇴직이 몇 가지를 주도해서 증명하였다.
우선 수입이 없어졌고 하루의 루틴이 달라졌고 지금껏 불렸던 이름이 달라졌다.
의욕, 삶의 의미, 자아성취 같이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적인 무상은 차치하고도 무엇보다 하드웨어적인 현실적 인간관계가 크게 달라졌다.
거래고객과의 관계가 거의 끊어지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무엇보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던 전장의 전우(?)와 같았던 온라인 게임동료들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약해졌다.
가족보다 더 많은 하루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동료들이 그동안 쌓아 두었던 관계의 두께에 따라 속도만 달리해서 멀어지고 끊어져 갔다.
그 동료였던 사람 중의 한 사람.
얼마 전 어쩌다가 내가 잊고 살았던 후배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 후배의 전화임을 알리는 내 전화기에 010-1234-5678이라 뜨는 것을 보면 내가 후배를 연락처에서 지우고 살았었나 보다.
-여보세요?
이종열입니다.
라고 맨트한 나에게 후배가 말했다.
-선배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저 구근수(가명)입니다.
기억하시죠?
들리는 소문에 선배님께서 최근에 공직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하며 이 친구 껄껄거리며 웃었다.
... 내가 공직자라고?
내가?
-아냐.
나 놀고 있어.
퇴직 이후 지금까지 줄곧 ㆍㆍ
헛소문이다라는 생각에 대답하는 내 말은 심각하였고 후배의 웃음은 더 길었다.
-아~
선배님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공직(公職)은 그 공직이 아니고 공(골프공) 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그 공직입니다.
하하하ㆍㆍ
상황파악이 된 나도 후배 말에 같이 낄낄 웃었다.
후배는 뭐라 뭐라 안부인사 끝에 이번 주말에 지들 동기들끼리 라운드를 하기로 하였는데 갑자기 동반자 중 한 명이 급한 일로 할 수 없게 되었다며 공직자(?)인 나를 게스트로 초청하기로 지들끼리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하였다.
... 내가 또 누구인가?
후배들 말처럼 나는 공직자가 아닌가?
공직자가 공직을 거부하면 쓰나?
누군가 나를 찾아줄 때 기꺼이 가야지 거부하면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 아닌가?
나는 내게 스스로 우문(愚問)하고 어쩌면 궤변에 가까운 우답(愚答)을 하였다.
후배에게는 당연히 가겠다 말하고 ㆍㆍ
클럽하우스에서 오랜만에 만난 그 옛날 어쩌면 아직 어린 티가 났었던 그 친구들 얼굴은 어느새 중년의 모습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후배들 모임에 게스트로 초청된 나.
내가 워낙 골프 마니아라 좋기는 하였지만 순한 두부찌개에 한둘 들어가 있는 청양고추처럼 맵고 불편한 것도 섞여 있었다.
그린피를 제외한 내가 부담해야 할 거의 모든 비용을 그들이 서로 내려하고 지들 동기모임인데 나를 위주로 게임하는 것 같아 불편하고 어색하였다.
불편하다고 한 내게
-그래도 선배님~
저희는 아직 현직에 있고 그 현직이 매월 같은 날 꼬박꼬박 월급을 주니 너무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ㆍㆍ
내 부담스러움을 눈치챈 후배 한 친구가 하는 말도 솔직히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럴 때는 각자 비용을 각자가 부담하는 것이 최고의 배려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티 내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공직자(?)로서의 아우라를 보여주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초청해 준 후배님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나는 내 편한 사람들과의 라운드보다 몇 배 더 집중하고 진중하게 게임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드디어 첫 홀
파 5 홀
내 드라이브는 10년 후배들보다 거리가 하나 뒤지지 않게 날아갔고 그것도 페어웨이 한 중간에 떨어졌다.
후배 셋의 공은 페어웨이를 중심으로 좌와 우로 나누어 떨어져 그들은 각자의 공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좌파, 너는 우파 하면서 낄낄 웃었다.
그들의 낄낄 웃음에서 햇과일의 풋풋함과 싱싱함이 느껴졌다.
행복해 보였다.
내 두 번째 우드 세컨드샷이 그린 50m 앞까지 날아갔고 첫 홀부터 버디를 하였다.
-역시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선배님
-공직자가 거짓이 아니었네요.
후배들은 한 마디씩 하이파이브에 축하의 말을 얹었다.
... 그래
역시 골프는 집중해야 해.
두 번째, 세 번째 홀에서도 나는 후배들에게 -우와, 역시~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네 번째 홀 티박스에 올라서서 내가 볼을 보내야 할 지점, 내가 친 볼이 날아가는 궤적을 상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 귀 뒤가 욱신 아파왔다.
이러다 말겠지
일시적일 거야
하는 내 자위의 생각을 귀 뒤 통증은 더 세게 짓눌렀다.
통증의 강도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처음 20분쯤은 신경 쓰이는 정도의 통증이었는데 점차 눈이 깜빡일 만큼의 통증으로 와 있었다.
... 나를 초대해 준 후배들 불편하지 않게 참자.
하였던 내 의지는 내가 쓰고 있던 인상에서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다.
- 선배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기어코 내 통증을 알아차린 후배 하나가 물었다.
-아냐
신경 쓰지 말고 라운드 해.
그날 나는 라운드 내내 몸이 주는 통증과 '이러다 자칫'하는 마음이 주는 걱정에 시달렸다.
덕분에 그날 골프는 거의 백돌이 수준으로 마쳤고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내 골프가 그럴 리 없다는 후배들 걱정에 나는 오늘 라운드 중에 일어난 증세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귀가 이렇게 아팠고 통증의 정도는 저랬고 하면서 병을 일러바치는 선배인 내 고자질을 후배 셋이 귀를 기울이며 들어주었다.
돈 자랑, 자식 자랑은 하면 안 되지만 병 자랑은 하는 것이 맞았다.
내 이야기를 다들은 후배들이 차례로 내 말에 review를 달았다.
- 선배님은 그 증상이 처음이라고요?
저는 그런 증상이 찾아온 지 서너 해가 넘었어요.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한 친구는
-선배님
저는 오늘 아침에도 그렀고요,
어제도 그랬습니다.
하였다.
후배들 말을 듣는 순간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남의 병(病)에 편승해서 내 병을 위로받는 그런 안심이 아니라 내가 라운드 내내 걱정하였던 '이러다 자칫'하는 걱정이 괜한 기우일수도 있겠다 하는 안심이었다.
나만의 병이 아니고 모두의 병이었구나 하는 안심이었다.
그런 증상을 서너 해 전부터 겪었다는 후배는 그냥 참고 넘겼다 하고 지금도 그렇다고 하는 후배는 진통제로 그때그때를 넘긴다고 하였다.
... 그래
진통제ㆍㆍ
나는 약을 좋아하지 않는다.
약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은 옛날부터 나는 미련하게 아픔을 참고 견뎠다.
(물론 많이 아프면 나도 약을 먹는다)
-선배님
이길로 바로 약국에 들러 진통제 사서 드십시오.
통증을 억지로 참는 것은 자칫 몸에 무리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진통제는 **이 직빵입니다.
모임을 파(破)하고 돌아서는 내 뒤에서 후배가 약국에 들르려 마음먹은 나에게 더 확신을 심어주었다.
... 그래.
진통제 **
약국에 들렀다.
집에 들어와서 씻고 다시 생각하면 나는 약국에 가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집 옆 약국에 들렀다.
내가 나를 잘 안다.
이리저리 해서 오늘 이리저리 아팠으니 진통제 **을 달라고 하였다.
하얀 가운만큼 얼굴이 하얀 여약사는 내 또래쯤으로 보였다.
-그런 증상은 여러 가지 원인일 수 있어요.
단순히 진통제를 드시는 것보다 병원으로 가서 사진이라도 한번 찍어보셔요.
저야 진통제를 팔면 좋겠지만ㆍㆍ
내과로 가야 할지, 이비인후과로 가야 할지 조차 몰라하는 나에게 길 건너 보이는 저 병원으로 가보라고 약사님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몽룡(가칭) 신경의학병원이었다.
의사 이름이 이몽룡이라는 것과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병원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 여러 가지 원인?
혹시 큰 병?
겁이 많은 내 머리는 이미 부정이라는 군대를 선발대로 먼저 파견하여 내 몸을 잔뜩 웅크리게 하고 있었다.
여약사가 일러준 눈에 보이는 지척의 병원까지 걸어가는 길이 꽤나 멀게 느껴졌다.
이리저리 해서 오늘 이리저리 아팠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병원에 가면 자꾸 의사 눈치를 본다.
의사에게 내 증상을 말할 때
내 검사결과지를 들고 있는 의사가 조금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내 머리에는 봄날 언 땅을 녹이고 불쑥 머리를 내미는 새싹 올라오듯 생각하나가 쓰윽 고개를 내민다.
... 이거 혹시? 하는ㆍㆍ
사진을 찍어보자고 하였다.
찍은 사진을 판독한 의사가 말했다.
-선생님 연세의 보통 이런 경우 목뼈에 이상이 있어서 그 뼈가 신경을 눌러서 생기는 통증인데 선생님은 그 경우는 아니니 아마 어젯밤 잠잘 때 자세가 좋지 않아 일시적으로 생긴 증상 같습니다.
많이 불편하시면 진통제를 드시고 3~4일 정도 견뎌봅시다.
하였다.
내 얄팍한 마음이 의사 말에 그동안 내 머릿속을 유영하며 다녔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을 어느새 지워버렸고 '이거 혹시?' 하는 생각은 '아~다행이다'로 바뀌어 놓았다.
그런데 그 3~4일
차도는 전혀 없고 오히려 욱신거리는 통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
진통제의 효과는 몇 시간용이었다.
병원으로 다시 갔다.
좀체 내 발로는 가지 않던 병원인데 싶어 혼자 실소가 났지만 통증을 참는 미련보다는 낫겠다 싶어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한눈에 나를 알아보았다.
이리저리 해서 버티어 보려 하였지만 이리 아팠고 저리 아팠다고 의사에게 다시 말했다.
의사는 며칠 전 찍었던 목 사진을 자신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다시 보더니 말했다.
-그럼 2층으로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약처방 해드릴 테니 옆 약국에 가서 약 받아 가세요.
죽상을 하고 앉은 내 표정과는 반대로 의사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 목뼈가 목 주위 신경을 누르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죠?
목뼈는 아직 정상이죠?
죽상의 얼굴을 한 내가 다시 물었다.
역시 무표정의 의사가 답했다.
-그럼 그 나이에 아직 아무 이상이 없기를 바랍니까?
일단 귀통증의 원인은 목뼈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 아이고
이 눔 참
같은 말이라도~
싶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프면 서럽다는 이론을 실제 경험하였다.
물리치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까 나았다.
거짓말처럼 ㆍㆍ
이틀만이었다.
평소 약을 잘 먹지 않았던 내 몸이 약에 내성이 없어 금방 나았을 거라 예측하지만 나 혼자 생각이다.
친구 셋과 이튿날 점심을 하였다.
이제 친구들과의 대화주제는 몇 가지로 줄어있다.
젊었을 때 지구에서 일어나는 수백, 수천 가지 대화 소재는 어느 순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건강, 연금, 서운한 아내, 귀여운 손주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 그제 아팠던 병자랑을 하였다.
콕콕 쑤셨던 것을 쿡쿡 쑤셨다고 하였고 조금 아팠던 것을 죽는 줄 알았다고 부풀려 말했다.
동병(同病)에 상련(相憐)할 수 있는 대상이 이제 친구들 밖에 없는 듯싶어 조금 아니 꽤나 많이 부풀리고 엄살을 얹었다.
씩 웃는 친구들 얼굴에서 내 엄살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느껴졌다.
-나는 아침에 처음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별 탈이 없으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어디가 불편하면 나 혼자 말해.
'어이 병(病) 친구야~
또 왔어?
내가 환영은 못하겠지만 억지로 밀어내지도 않을게.
그러니 너도 얌전히 며칠만 있다가 조용히 가줘.
우리 잘 지내보자'
나보다 생일이 석 달 늦은 친구 홍길동이 내 말에 지 말을 얹었다.
-친구야
나이 들어 어디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듯싶네.
친구 임꺽정이 툭 내뱉었다.
임꺽정은 나보다 생일이 석 달 빠른 친구인데 늘 나보고 동생, 아우라고 한다.
지 말에 의아해하는 나와 길동에게 꺽정이 부연하였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 필연인 생로병사의 굴레인 것은 무식한 너희도 알고 있지?
나와 길동이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꺽정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만약 90살까지 산다고 하였을 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20대 얼굴과 건강을 가지고 90살까지 살면 갈 때 삶이 아깝고 아쉬워서 어떻게 갈 수 있겠어?
적당할 때 늙고 적당할 때 아파야 삶에 미련이 없어지고 삶의 미련을 놓게 되지.
그렇지 않아?
아프니까 중년이고 아파야 훌훌 떠날 수 있어.
나와 길동은 또다시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