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목소리

글라라 축일 아침에

by전지은


매년 7월 말, 8월 초 어느 날 아침엔 전화가 걸려왔다. “생일 축하 합니다” “해피 네임 데이 투유”의 노래를 한국어와 영어로 불러주면 난 조용히 듣고, 감사합니다로 마음을 전했다. 이곳에 이사오며 만났던 한국 수녀님. 수녀원과 집이 가까웠던 이유도 있지만 엄마가 생전에 우리 집에 계실 때 수녀님은 자주 오셨다. 엄마랑 시장도 가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도 가고, 물론 성당도 함께 가시고. 참 따뜻한 분이셨다. 그리고 신앙생활과 일상에서, 큰언니처럼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던 분이다. 지금은 두 분 모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문득, 두 분이 만나 손잡고 이 동네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건 아닌가 싶다.


어제는 글라라 축일. 가톨릭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성인의 이름으로 영세명을 받는다. 대부분은 대부모가 지어 주지만 더러는 자신의 생일 근처의 성인 이름을 받기도 한다. 너무 오래전 상황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대모님이 내 생일 근처의 성녀 ‘글라라’를 택해 주셨던 것 같다. 글라라 성녀는 “밝은 빛”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기도 중에 세상을 밝게 비출 빛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뒤, 출산했다고 전해진다.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성글라라 수도회)를 창설하기도 한, 복음적 가난을 실천했던 이탈리아 성녀이다.


나는 성녀의 이름처럼 밝은 빛이 되지 못했고, 청빈과 가난을 실천하지도 못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해마다 수녀님의 노래를 들으며 나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되었던 하루. 그 전화가 끊긴 지 벌써 5년쯤 지났다.


축일 아침, 몇 개의 문자를 받았다. 잊지 않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 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수녀님의 목소리를 애써 기억해 낸다. 수녀님의 조용하고 따뜻하고 늘 행복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신자들 모두에게 생일과 축일에 전화를 걸어 노래를 불러주셨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전화 속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만 특별하다는 느낌.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종일 행복했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뒤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좋은 식당을 예약했다는 아들의 메시지를 받았다. 동네에 새로 생긴, 엄청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약속 시간, 식사를 하며 이야기가 길어진다. 3시간 코스의 식사. 식사와 함께 나오는 와인 이야기와 산 언덕과 정상의 뷰와 야외 공연장이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우아한 식사를 해 보았던 것은 언제인가? 기억도 없지만 몇 년에 한 번쯤은 이런 호사도 나쁘지는 않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멋진 식사를 하고 나오는 시간. 햇살이 넘어가는 황혼의 산등성이에서 수녀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어두움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수녀님의 노래는 더 큰 그리움이 되어 가슴으로 불어든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나, 글라라는 언제쯤 누구에게 ‘ 밝은 빛’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리움은 깊어지고 삶은 아쉬움만 가득한 채, 너른 주차장을 또박또박 소리를 내며 걷는다. 먼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 긴 꼬리를 물고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