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이라는 세월

똑같은 어느날

by전지은


숫자가 주는 무게감. 무겁고 길고 지루하다. 우리 둘의 모습은 그 안에 자리한다. 연분홍 청춘을 지냈고, 푸름이 만개했던 숲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산마루에서 내려가는 길을 조심스레 걷는다. 눈앞에 보이는 단풍나무 색이 곱기만 하다. 함께해서 좋았던 기억들, 아프고 힘들었지만 잘 견디어 냈던 인생 여정의 구비들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마주 본다.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다른 재주가 없어서, 사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비빌 언덕이 없었던 유학생 시절이 그랬고, 공부가 끝나고 장사를 시작할 때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틀리지 않았다. 태평양을 건널 때도, 바닷가 마을에서 로키산맥 끝자락으로 2박 3일 운전을 해 이사를 올 때도, 새로운 곳에서는 또 다른 것들이 반기고 있을 거라는 기대 외에는 별 두려움이 없었다. 경험이 전무 한 채 뛰어들었던 생활 전선. 곳곳에서 삶의 복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여정은 누구나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길을 가는 일방통행이다. 돌아올 수 없는 길.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길만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시행착오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올 해의 결혼기념일은 마침 부활절 다음날이었다. 사순절을 지내고 성주간 내내 마음이 쓰였던 성당 일 들 때문에, 부활주일이 지나면 그냥 쉬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감기 몸살이 찾아왔다. 온몸이 무겁고 기운도 없다. 잔기침과 목소리도 완전 허스키. 말소리만 들으면 무슨 중병이라도 걸린 것 같다. 결혼기념일이면 장미 꽃다발을 받아야 하고,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가야 하고,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와인 잔을 기울여야 한다는 공식이 완전히 깨졌다. 저녁이라도 먹으러 나가자는 남편의 말을 매몰차게 거절하며 ‘아프다’고요, '쉬어야 한다’고요, 라며. 섭섭해했지만 아프다는데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장미꽃 아름드리로 사 오지 말라는 부탁도 곁들였다. 시들어지는 내 모습 같아서 싫다며. 남편은 계속 방과 부엌과 내 방 근처를 서성거리며 진짜 아무것도 안 할 거냐고 묻는다. “그렇다고요, 쉬어야 한다고요”라는 대답만 되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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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먹고 자고, 일어나면 뜨거운 차 한 잔에, 뜨거운 숭늉 한 그릇 마시고 또 돌아 눕는다. 2박 3일을 자고 또 자고, 이젠 너무 누워있어 허리가 아프다. 오늘에서야 겨우 방 밖을 나와 부엌을 살핀다.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냉장고 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기를 몇 번. 보다 못한 남편이 월남 국수를 사 왔다. 국물만 몇 모금 마시고 또 눕는다.

살면서 이런 게으름의 호사를 누려본 것은 언제였던가. ‘쉬어가라’는 그분의 뜻인 것 같아 그야말로 코가 노랗게 빈둥거렸다. 독서도 않고, 성경 필사도 쉬고, 이러닝의 수업도 미루어 두고, 사목회 수첩도 넘겨보지 않았다. 오늘, 겨우 주일 성가를 찾아본다. 그때까지 목소리가 돌아올지 알 수는 없지만.

결혼기념일, 그것도 45주년. 긴 세월 함께했다.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있네, 하는 느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던 것 말고는 아무것도 더 잘한 것이 없었던 시간들 안에서 우린 함께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함께하고 있는 날’ 중의 어느 하루인 것에 감사한다. 또 고맙다. 이 팍팍한 내 성질을 견디어줄 만한 남자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은 많이 고맙고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


동네의 자랑인 브로드모아 호텔(Broadmoor Hotel)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못했고, 장미꽃 한 다발을 거절했어도, 오늘 이 시간 손잡고 있음만 감사하면 안 되는 일일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념일.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고, 45년의 세월 나쁘지 않았다고, 가슴에 피는 따뜻한 감사의 꽃 피워 전한다. 그때도 지금도 또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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