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다시 읽다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김민식 군이 숨졌다.
그 사고가 남긴 상처는 법의 이름이 됐다.
이듬해 3월 시행된 이른바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를 대폭 강화하고,
사망 사고 가해 운전자에게
최대 무기징역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감정적으로 격렬했고,
슬롯적으로 뜨거웠으며,
정치적으로도 빠른 법이었다.
6년이 지났다.
이제 감정이 아닌 숫자로 물어야 할 때가 됐다.
법은 효과가 있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한 것인가.
도로교통공단 TAAS와 경찰청 통계를 병렬로 놓고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2018년 435건, 2019년 567건이었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에는 483건으로 줄었다.
그런데 이후 흐름은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523건, 2022년 514건, 2023년 486건, 2024년 526건.
2024년의 526건은 전년 대비 40건,
비율로는 8.2% 증가한 수치다.
부상자도 같은 기간 523명에서 556명으로 늘었다.
이 통계를 두고 "민식이법은 실패했다"고 결론 내리는 사람도 있고,
"원래부터 사고를 없애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고 반론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핵심은 사망자 통계를 함께 봐야 한다는 데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쿨존 내 어린이 사망자는
2019년 6명에서 2020년 3명,
2021년 2명, 2022년 3명, 2023년 2명,
2024년 2명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숫자는 냉정하게 읽어야 한다.
사고 건수는 줄지 않았지만,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고는 분명히 줄었다.
이것이 민식이법의 정확한 성적표다.
사고를 막는 데는 미흡했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치명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의미 있는 효과를 냈다.
30km 속도 제한이 사고 빈도를 낮추지는 못했어도,
충돌 에너지를 줄였기 때문이다.
시속 50km에서의 보행자 치사율이 약 80%인 반면,
30km에서는 10~15%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것은
국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물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식이법은 실패한 정바카라이 아니다.
그러나 충분한 정바카라도 아니다.
스쿨존 사고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운전자 부주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패턴이 반복된다.
도로교통공단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보행 중 사상자는
오후 2시~4시 사이에 471명,
오후 4시~6시 사이에 495명이 집중됐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이
전체 사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같은 분석에서 연령대별로는 만 7세(306명),
8세(319명), 9세(296명) 순으로 피해가 컸다.
모두 초등학교 1~3학년 연령대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합쳐 읽으면,
문제의 구조가 보인다.
오후 2시에서 6시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흩어지는 시간이다.
하교, 학원 이동, 편의점 들르기, 친구 집 방문.
이 시간의 아이들은 어른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정해진 경로가 없고,
예측 가능한 동선도 없다.
그리고 이 시간대에 학원 셔틀버스,
학부모 승하차 차량,
배달 오토바이,
일반 통행 차량이 한꺼번에 뒤섞인다.
더 중요한 것은 연령 문제다.
7~9세 아동은 교통법규를 배웠더라도
'순간 판단'이 미숙하다.
차량의 속도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차가 멈출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며,
앞서 뛰어가는 친구를 무심코 따라간다.
이것은 부주의가 아니라 발달 단계의 특성이다.
결국 스쿨존 문제의 핵심 구조는 이렇다.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이는 연령대가,
가장 통제가 느슨한 시간대에,
가장 복잡한 교통 환경 속에 놓인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 단속은 실질적으로 강화됐다.
서울시 기준으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무인단속카메라는
2022년까지 1,303대가 설치됐다.
서울시가 카메라 107대 설치 전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설치 지점 주변 어린이 보행사고는 7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보행사고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단속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수치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횡단보도 앞에 불법 주정차된 대형 SUV나
1톤 탑차 뒤에서 아이가 뛰어나오는 순간을
카메라는 예방하지 못한다.
좁은 이면도로에서
학원 승합차와 보행자가 뒤섞이는 혼잡을
카메라는 정리하지 못한다.
운전자가 시속 29km로 달리면서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카메라는 해결하지 못한다.
단속 카메라는 과속을 잡는 도구지,
사고의 원인을 제거하는 도구가 아니다.
한국의 스쿨존 정바카라은
빠른 단속과 높은 처벌로
단기 효과를 확보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됐을 때,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기 시작했다.
20년 전 초등학교 교통안전 교육을 떠올려보자.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기,
손 들고 건너기,
좌우 살피기,
무단횡단하지 않기.
내용은 단순했지만 반복적이었고,
체화를 목표로 했다.
지금 스쿨존 정바카라의 언어는 다르다.
운전자 처벌, 무인카메라, 속도 제한, 구역 확대.
피해자 보호라는 원칙은 옳다.
그러나 정바카라이 한 방향으로만 쏠리면 균형은 무너진다.
"차가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맞다.
자동차와 보행자가 충돌할 때,
물리적 피해를 감당하는 건 항상 사람이다.
운전자에게 더 큰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법 원리다.
그러나 "차가 조심할 것이니 나는 괜찮다"는 인식이
아이들에게 심어진다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위험이 된다.
7살 아이가 차가 멈추겠지 하는
막연한 확신으로 횡단보도에 뛰어드는 것과,
멈추는지 먼저 확인하고 건너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운전자 바카라임을 강화한 것과 동시에,
보행자 교육을 강화했어야 했다.
지금 정바카라의 공백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한국이 법과 단속 중심으로 스쿨존 정바카라을 설계할 때,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다른 접근을 택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의 도심 학교 구역에는
'홈 존(Home Zone)' 개념이 적용된다.
도로 폭을 좁혀 차량이
물리적으로 속도를 낼 수 없게 만들고,
고원식 횡단보도를 설치해
차량이 오르막을 지나듯
속도를 줄이도록 유도한다.
지그재그 차선 설계로
직선 주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단속이 아니라 도로 구조가 속도를 낮춘다.
스웨덴의 '비전 제로(Vision Zero)'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정바카라의 출발점은 냉정한 전제다.
"사람은 실수한다."
운전자도, 보행자도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면 실수가 발생해도 죽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1994년 도입 이후 스웨덴의 교통사망자는 꾸준히 감소해,
현재는 인구 10만 명당 연간 사망자가
2명대 수준까지 내려갔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약 5~6명대다.
미국은 등하교 시간대에 한해
플래시 신호등을 점멸시키고
속도를 대폭 낮추는 방식을 많이 쓴다.
언제나 엄격한 규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실제로 있는 시간과 장소에 집중하는 것이다.
공통점은 하나다.
처벌로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구조를 통해 행동을 유도한다.
처벌은 운전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설계는 운전자가 자연스럽게
천천히 달리게 만든다.
전자는 의지의 문제이고,
후자는 환경의 문제다.
한국의 스쿨존은 아직 "지켜라"고
요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더 안전한 도시는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민식이법 이후 6년,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할까.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카메라를 더 달아야 하는가"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다른 데 있다.
왜 사고는 여전히 하교 시간대에 집중되는가.
불법 주정차는 왜 계속 시야를 가리는가.
왜 도로 설계는 바뀌지 않는가.
왜 초등학교 저학년 보행 교육은
운전자 단속만큼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가.
왜 스쿨존은 여전히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인 공간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법원이나 경찰이 아닌,
도시계획가와 교육자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내놓아야 한다.
안전은 한쪽의 바카라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운전자는 조심해야 한다.
이 원칙은 흔들릴 수 없다.
자동차는 보행자보다 압도적으로 큰 위험을 만든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법이 운전자에게 더 큰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운전자 혼자
스쿨존을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학교와 부모는 아이들에게
"차가 먼저 조심한다"는 수동적 기대가 아니라,
"내가 먼저 확인한다"는 능동적 습관을 반복해서 심어줘야 한다.
지자체는 불법 주정차를 방치하지 말고,
횡단보도 주변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을 정비해야 한다.
도로 설계자들은 속도를 낮추도록 '요구'하는 대신
속도를 낼 수 없도록 '설계'해야 한다.
경찰과 행정은 단속 건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사고가 반복되는 지점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제거해야 한다.
스쿨존은 여러 실패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운전자의 실수,
보행 교육의 공백,
불법 주정차의 방치,
좁고 낡은 도로 구조,
그리고 단기 효과에 집중한
정바카라의 한계가 한 지점에 모인다.
민식이법 이후 스쿨존은 분명 달라졌다.
운전자들은 이전보다 경각심을 갖게 됐고,
무인단속카메라가 확대됐으며,
사망사고는 줄었다.
이 변화를 가볍게 볼 수 없다.
법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2024년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526건은 전년보다 늘었다.
6년이 지난 지금,
사고 건수는 민식이법 시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반만 성공했다.
죽음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는 환경을 바꾸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카메라만으로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속도 제한만으로는 사고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
스쿨존 정바카라의 다음 단계는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도로를 설계하고,
시야를 확보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불법 주정차를 없애고,
운전자가 자연스럽게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는 공간을 만드는 것.
스쿨존의 목표는 운전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살리는 것이다.
그 목표에 우리는
아직 다 도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