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프공의 삶
"원래 정해진 가격은 없어요. 이때까지 그렇게 해드린 거지. 계속해드리니까 오해하신 겁니다."
선을 넘었다.
지난 3년 동안 나에게 일을 주던 광고·영업 대행 회사, 그 팀장의 차가운 한마디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두게 된다.
3년 전, 나는 대구의 한 코킹 업체에서 팀원으로 일당을 받고 있었다.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노동 강도는 점점 높아졌고, 새로 들어온 인부는 기가 센 건지 나보다 인정받고 일당도 높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돌아선 건,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를 접수해 일을 시킨 날이었다.
로프공은 줄을 탄 채로 옆으로 갈 수 없다. 한 줄 작업이 끝나면 땅으로 내려와,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줄을 옆으로 옮겨 설치하고, 또 내려가서 작업해야 한다. 보통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그런데 그 아파트는 계단이었다. 한 집에 보통 대여섯 줄을 타니, 장비를 끌고 30층을 걸어 오르내려야 한다는 소리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냐고? 훗. 그걸 오전에 하고, 오후에 한 집을 더 해야 한다. 아파트 개보수 코킹은 제 일당을 받으려면 하루 두 집을 해야 한다. 사정이 생겨 한 집만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일당은 반이 되고, 오야지(업체 사장) 눈치를 봐야 한다. 내가 못 버는 만큼 그도 못 버는 구조다. 이 바닥도 신뢰가 중요해서, 짜놓은 스케줄을 못 채우면 일거리가 줄거나 힘든 일만 돌아오는 식으로 처우가 나빠진다.
그날 나는 따졌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원래 이런 아파트 안 하잖아요. 너무 힘듭니다."
돌아온 답은 매몰찼다.
"거 잘못 잡긴 했는데, 그래도 잡힌 건 해줘요. 담에 이런 일 없게 할게."
그간 쌓인 것이 터졌다.
"안 그래도 요새 옥상층 많아서 힘들었는데, 이건 아니죠. 오늘 이 집만 하고 당분간 쉬겠습니다."
(옥상층은 옥상과 가까운 층으로, 로프공에게 제일 힘든 층이다. 줄을 중심으로 좌우 반경만큼 이 한 집의 작업 범위인데, 시계추를 떠올리면 쉽다. 옥상에서 멀수록 반경이 넓어져 줄 수가 줄고, 옮겨 타는 횟수도 줄어 그만큼 편하고 시간도 단축된다. 옥상 바로 아래는 그 반대다.)
"그래도 잡은 게 있는데 오후 집까지 하고 쉬죠?"
"30층을 걸어야 하는데 힘듭니다."
"거 올라가지 말고, 고객한테 부탁해서 세대 안에서 할 수 없는지 물어봐요. 그럼 되잖아요."
'그걸 왜 내가 빌어야 하나. 실수한 사람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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