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대의 추억

- 시간이 약이다

by푸른 잎사귀

오 년 전에 갈비뼈가 부러졌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갇혀서 보내야 하던 시절이었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확진자가 많아질수록 집 밖 외출이 엄격히 통제되던 시절이었다.

생계를 위해 출퇴근을 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인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1시간, 또는 2~3시간씩 줄을 서야 했으며, 퇴근 후 급하게 줄을 섰다가도 마스크를 사지 못해 낭패를 보기도 했다. 울음과 하소연의 사연이 텔레비전 뉴스로 나오던 때였다.


도시는 갑자기 정전이 된 듯, 사람이 사라진 폐허가 된 느낌이었다. 길을 걷다가 사람이라도 만나면 숨을 멈추거나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회피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사람이 제일 무서웠던 시절. 재난 상황이 딱 이런 거구나를 몸소 체험하는 하루하루였다.


답답함과 우울함이 찾아오려 할 때, 때마침 재난지원금이 나왔다. 나와 남편은 답답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고, 자연을 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콧바람을 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사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린이였다. 초등학교 때 자전거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그마저도 뒷바퀴에 보조 바퀴가 두 개 달린 그런 자전거였다. 아무튼 성인이 되어서는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는 좋은 자전거가 필요 없었다. 그냥 잘 굴러가면 되었다.

중고 자전거를 사려고 했으나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곳이 마땅치 않아 집 근처 삼천리자전거를 방문했다. 사장님께 설명을 들은 후 자린이인 나에게 맞는 자전거를 샀다. 일명 따릉이였다.


자전거를 사면서 헬멧도 사자고 했다. 남편은 동네에서 타는데 무슨 헬멧까지 필요하냐고 했다. 나는 초보이기 때문에 꼭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고, 남편도 꼭 썼으면 좋겠다고 하자 사장님께서도 헬멧은 꼭 써야 한다고 하셔서 둘 다 헬멧까지 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헬멧을 샀던 행동이 나중에 나를 살리는 큰일이 되었다.


남편은 공원의 한적한 주차장에서 자린이인 나를 강습해 주기 시작했다. 운전은 절대 남편에게 배우면 안 된다고 하듯이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알려주다 보니 남편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 잘 타지 못했다.

남편은 중고로 로드 자전거를 사서 안장을 자신의 키에 맞추고 허리도 숙여서 선수 아닌 선수처럼 타기 시작했다. 나는 따릉이를 타면서 남편의 뒤를 쫓아가려고 아무리 애써도 힘만 들 뿐, 쫓아가기 힘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도 자전거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이날 나는 남편을 따라잡고 싶었다. 동네 산바카라길에는 자전거도로가 함께 되어 있었다. 아직 코로나 시절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도 없겠다, 남편은 저 멀리 달리고 있겠다, 내가 남편을 따라잡으리라 하면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닥이 파인 곳을 피하지 못하고 자전거가 붕 뜨면서 내 두 발이 페달에서 떨어졌다. 아직 초보인지라 페달에서 떨어진 발을 다시 페달 위에 올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손잡이가 좌우로 막 흔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중심을 잡으려 애썼으나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괜찮으세요?”라고 했는데 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깨어났고, 근처 의자에 앉아서 ‘아, 내가 넘어졌구나’라는 것만 기억할 뿐이었다. 저 멀리 넘어져 있던 자전거를 끌고 왔고, 굴러가 있던 물통도 가져왔다.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기억하려 했으나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 멀리 남편이 방향을 바꿔 나에게 오고 있었다. 내가 하도 오지 않으니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하고 걱정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보고 “넘어진 거야?”라고 질문했는데, 나는 “내가 넘어졌나? 아닌가? 기억이 안 나”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구나 싶어서 내 헬멧을 살펴보았다. 헬멧에 금이 가 있었다. 그리고 내 옷이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옷을 걷어보니 팔과 다리가 바닥에 쓸려서 멍이 들어 있었다. 그걸 보고 남편이


“넘어졌네? 괜찮아?”


라고 했고, 내 헬멧이 자기 사명을 다했다고 했다. 이제 이 헬멧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나 대신 충격을 흡수했고, 그런 헬멧은 더 이상 기능을 상실했기에 쓸 수 없다고 하였다. 남편과 나는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도 나도 큰일이 없을 거라고, 그냥 넘어진 거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의 일이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순간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것이 분명했고, 헬멧에도 금이 가 있고 옷도 뜯어져 있어서 병원에 가보고 싶었으나 일요일이어서 다음 날 병원에 가보기로 하였다.

월요일에 병원에 가서 머리 CT를 찍고 흉부 사진을 찍었다. 머리는 정상이었다. 헬멧을 썼기에 다행이었다. 헬멧이 충격을 흡수해 주었기에 내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만약 이때 헬멧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흉부 사진 결과를 보러 갔다. 사진을 보는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왼쪽 5번째 갈비뼈가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게 분명 내 갈비뼈 사진인가 싶어서 의심이 들었다. 이렇게 부러졌을 정도면 상당히 아팠을 텐데, 어제는 넘어졌으니 당연히 아픈 것이고 멍이 들고 살이 쓸렸으니 아프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나의 갈비뼈는 사정없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의사는 뼈가 붙으려면 적어도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복대를 3개월 이상 착용해야 함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염증이 발생하면 안 되므로 염증 억제와 통증을 완화해 줄 약을 처방해 줄 뿐이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약을 먹고 2주일 후에 오라고 한 것 같고, 그때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경과를 살피고 약을 지어 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약도 안 먹고 병원도 한 달에 한 번을 가다가, 그 후에는 6개월에 한 번 갔던 것 같다.


뼈가 부러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잘 붙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면서 뼈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 검색하여 찾아 먹는 것 외에는 더 할 것이 없었다. 뼈에 좋은 것이 우슬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슬초를 찾아서 닭발과 고아 먹기도 하였다. 사골을 먹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 정형외과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나의 갈비뼈에는 뼈와 뼈 사이에 살이 붙어 봉긋 올라온 모습이 보였다. 그 사진을 보면서도 ‘이게 내 갈비뼈인가…’ 싶었다. 우리 몸의 기관 중에 부러졌을 때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붙어서 다시 뼈가 생성되는 기관이 갈비뼈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싶었다. 갈비뼈는 기침을 심하게 해도 부러질 수 있는 약한 부분이라는 것을 다쳐보고서야 알았다. 그 약한 갈비뼈가 중요한 심장을 감싸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했고, 부러진 뼈가 다시 붙으면 더 단단해지는 원리도 신기했다.


몸속 어떤 기관을 취해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데 생명에 지장이 없이 하나를 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고 그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리고 욕심은 절대 금물이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때 남편을 따라가려고 속도를 내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고는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차피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순간 안전수칙을 지켜가며 머리에 헬멧과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자전거를 탄 나를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제 자전거를 탈 때 절대 속도를 내지 않는다. 잘 탄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더 주의를 기울이며 타게 되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쳤는데도 또 자전거가 타고 싶냐고. 그런데 신기한 건 다친 건 다친 거고, 그때는 나의 부주의 때문이었으므로 자전거를 타며 보았던 풍경과 시원한 바람의 감촉을 알기에 자전거 타는 그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내가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가 6월이었다. 그리고 9월에 복대를 풀었다. 하필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중순경에 다쳐버렸으니 나의 여름은 복대와 하나가 되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올여름 유난히 더웠다. 그런데 입추가 하루 지나고 나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그 시절의 아픔도, 부러진 뼈도 시간이 지나니 추억이 되고 뼈는 더 단단해졌다.


이 여름이 지나면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오고 추석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도 더웠고, 올 것 같지 않던 가을과 겨울을 지나 또다시 봄이 왔다. 그리고 다시 여름. 어느덧 2026년의 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글쓰기 모임 정 선생님이 탁구를 치다가 넘어져 왼쪽 다리에 깁스한 사진을 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지난 시절 뼈가 붙기만을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언제쯤 이 복대를 풀 수 있을까, 언제쯤 다시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며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은 참 신기하다.


그때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아픔도 지나가고, 부러진 뼈도 다시 붙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아픔마저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부러진 뼈가 다시 붙어 더 단단해지듯, 사람도 살아가면서 겪은 아픔만큼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코로나도 그랬다. 그때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고, 언제쯤 다시 사람들과 마음 놓고 마주 앉아 웃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도시 전체가 멈춰버린 것 같았지만, 결국 그 시간도 지나갔다. 시간은 아픔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아픔을 지나온 자리에서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제 입추를 지나 바람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것이다. 그때의 나도, 그때의 코로나도, 부러진 갈비뼈도 모두 지나간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천천히 살아간다. 언젠가 또 넘어질 수는 있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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