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성능 다음의 경쟁은 어디에서 벌어질까?
“제 가게가 폐업으로 되어 있네요. 오늘 아침에도 문 열었는데요.”
한 고객에게 항의성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예측한 데이터의 정확도는 92%, 숫자로 보면 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표인 고객 매장의 데이터가 틀렸다.
“그래도 나머지 92개는 잘 맞지요? 다른 데는 이 정도 못 맞추거든요 “ 설명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설명을 해서 고객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예측한 데이터니까 정확도가 92% 정도면 매우 높은 편이고, 100%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업은 없다고 주절주절 말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고객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는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10개 중 9개가 맞으면 얼추 맞는 것 같지만, 고객에게 중요한 것은 틀린 1개 일지 모른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에 도달하면 그 후의 미세한 조정은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지만, 때에 따라서는 민감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고도화된 AI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낸 데이터, 그리고 92%의 정확도. 그렇다면 정확하지 않은 나머지 8%는 누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요즘 AI 업계를 보면서 이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AI 모델들의 성능 차이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Stanford HAI의 「2026 AI Index」에 따르면 2026년 3월 Arena 평가에서 상위 기업의 모델들은 매우 근접한 점수대에 모였다. 일부 전문 영역 평가에서는 상위권 모델들의 격차가 3%p 수준까지 좁혀졌다.
그렇다면 AI 기업들의 2027년 목표는 무엇이 될까? 모델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야 할까? 어쩌면 AI 기업들이 가장 잘하고, 가장 자신 있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능을 높이면 고객의 선택을 받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까? ChatGPT는 ‘가장 성능 좋은 모델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기보다, 브랜드 선점의 힘을 보여준다. 반대로 Claude는 기업이 돈을 쓰는 핵심 업무인 코딩에서 확실한 우위를 만든 것이 B2B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AI모델의 성능 격차가 줄고 있다. 성능이 꼭 시장점유율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인고객과 기업고객의 선택이 다를 수 있다. AI기업들의 경쟁 구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데이터 생태계를 생각했다.
각 회사가 가지고 있는 원천데이터가 비슷하고, 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비슷하고, 새롭게 만들어도 경쟁사가 금방 따라올 수 있다고 하면 그럼 우리는 무엇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
GPT처럼 대중화를 위한 브랜딩을 해야 할까, 아니면 클로드처럼 성능을 높여야 할까, 아니면 젠스파크가 PPT를 잘 만드는 것처럼 특정 영역에서 우위를 만들어야 할까?
여러 가지 요소가 있고, 그것들이 다 충족되면 좋겠지만, 꼭 필요한 3가지가 있다. 바로 성능, 사람, 운영이다.
AI, 데이터를 이야기하면서 성능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실제 활용되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집중해야 할 부분은 어떤 영역에서 성능이 좋은가 하는 부분이다.
상위 AI의 성능 차이가 3%밖에 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3%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법률 문서에서 핵심 조항을 찾아내거나 금융 거래에서 이상 징후를 탐지하는 정확도라면 3%는 상당히 큰 차이다.
“우리 모델의 정확도가 가장 높다”라는 표현만큼 고객에게 설명하기 쉽고 홍보하기 좋은 경쟁력도 드물다. 다만 모든 시험에서 평균적으로 3점을 더 받는 것과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에서 3점을 더 받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여러 AI 서비스를 사용하지만 항상 종합 성능이 가장 높은 서비스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GPT를 쓰다가도 PPT를 만들어야 할 때는 프레젠테이션 제작에 특화된 Genspark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고객도 비슷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문제를 평균적으로 잘 푸는 AI보다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를 잘 푸는 AI가 나에게는 더 좋은 AI일 수 있다.
모델링 데이터의 정확도가 92%에서 95%로 높아졌다고 해보자. 그 3%가 고객이 중요하게 보는 지역이나 핵심 고객군의 오류를 줄였다면 상당한 가치가 있다. 반대로 고객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영역에서 정확도가 높아졌다면 숫자는 좋아졌지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성능을 높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선 다음에는 이 성능의 향상이 고객에게 중요한 3%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는 사람이다. 데이터와 AI가 일상화되는 시대에서 사람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다.
데이터와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의 판단이 줄어들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데이터가 많아지고 분석이 정교해질수록 무엇을 볼 것인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결과를 어떤 맥락에서 해석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판단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판단할 수 있는 재료를 더 많이 제공하는 셈이다.
AI 시대에는 사람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AI가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답을 만들어낼수록 사람은 그 답을 직접 만드는 역할에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정하고, 나온 답을 어떻게 사용할지 판단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데이터 사업에서도 아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고객이 “매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파일을 보내는 사람과 “어디에 쓰시려고요?”라고 한 번 더 묻는 사람의 결과는 다르다.
신규 점포를 고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매출 데이터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상권의 성장성, 경쟁 점포, 유동인구와 소비력까지 함께 봐야 할 수 있다.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도 누가 고객의 문제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품이 된다.
똑같은 상품을 가지고도 누구는 잘 팔고 누구는 팔지 못한다. 같은 데이터를 설명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고객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고, 어떤 사람은 상품 설명에서 끝난다. 오랫동안 특정 분야의 문제를 해결해 온 사람이라면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기도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에서 데이터를 해석하는 사람으로, 답을 주는 사람에서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상품을 설명하는 사람에서 고객의 문제와 상품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AI 시대 데이터의 값에는 데이터 자체뿐 아니라 그 데이터를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아보는 사람의 값도 포함되어 있다.
세 번째는 운영이다. 데이터의 값은 납품하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민원 고객의 전화를 받고 나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원천 데이터를 다시 확인하고, 왜 영업 중인 점포가 폐업으로 분류됐는지 원인을 찾고, 예외 값을 수정하고, 다음 공급분에 반영한다. 한 건을 고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같은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프로세스도 살펴봐야 한다.
화려하지 않은 일이다. 데모 화면에 나오지도 않고 보도자료에 실리지도 않는다. 새로운 AI 모델을 개발했다는 발표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다.
그런데 고객은 바로 이런 순간에 상품과 공급자를 평가한다. 이 평가들이 쌓이면 신뢰가 된다.
AI가 발전할수록 화려한 일부터 자동화될 것 같지만 실제 서비스에서는 마지막까지 남는 일들이 있다. 예외를 확인하고, 잘못된 값을 고치고, 고객의 문의에 답하고, 새로운 사례를 다시 규칙에 반영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자동화가 덜 됐다는 증거일까. 자동화가 실제 사업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마지막 구간이다.
AI가 맞힌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틀린 부분을 어떻게 발견하는 가다. 중요한 오류와 그렇지 않은 오류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언제 사람에게 넘길 것인지,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바카라임지고 고치는 지도 결국 서비스의 일부다.
고객은 기술의 평균 성능만 경험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발생한 예외 한 건도 경험한다.
처음의 전화로 돌아가 보면 더 분명해진다. 고객은 92%의 정확도를 가진 데이터 상품이라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정확도는 당연하고 나머지 부족한 8%를 처리하는 운영 방식까지 포함한 데이터 서비스를 산다.
세 가지의 무게는 고객마다 다르다. 어떤 고객에게는 1%의 정확도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어떤 고객에게는 자신이 풀려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해 주는 사람이 중요할 수 있다. 이미 데이터를 업무에 사용하고 있는 고객에게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빠르게 수정하고 대응하는지가 다음 계약을 결정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는 시장에서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높이려고 하는 3%는 고객에게 중요한 3%인가? 데이터의 가치를 알아보고 고객의 문제와 연결할 사람이 있는가? 남아 있는 8%를 우리는 어떻게 바카라임지고 있는가?
처음에는 누가 좋은 기술로 더 좋은 데이터를 만드는가가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누가 그 데이터를 고객의 문제와 잘 연결하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누가 데이터의 불완전함까지 끝까지 관리하는가가 차이를 만든다.
성능을 더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객에게 중요한 성능이라면 1%라도 끝까지 높여야 한다. 다만 기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이후 고객의 선택을 만드는 마지막 차이는 정확도라는 숫자 안에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AI 시대, 데이터의 값은 데이터 안에만 있지 않다. 데이터는 성능(품질)에서 시작해, 사람을 거쳐, 운영에서 완성된다. 끝까지 해내는 기업, 그 기업에게 기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