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 아름다운 황인득 작가님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았습니다.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하얀 나비 작가님의 인도로 방문했지요. 글이 단정해서 좋았습니다~^^. 제 글이 재밌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그리 또 그렇지도 않아 송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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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을 할아버지는 꼭 한 봉지씩만 샀다. 반공일이 돼 본가에 가면 울 애기 온담서 폴새 가져갔다 아재가~~ 나를 보며 신작로 점빵 고모가 제일 먼저 반긴다. 반가워서인지 라면을 팔아서인지 영업용인지 모를 웃음은 버스가 남긴 먼지 사이로 흩어지고,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신작로 끄트머리로 주홍빛 노을이 넘어간다. 노을을 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착한 마루엔 삼양 라면 한 봉지만 덜렁 놓여 있다.
"산 짐에 한 봉당리 더 사믄 낼도 묵으지... 한 봉다리만 덜렁? 나한테 너무 짠 거 아니여?"
그래도 꼭 한 봉지였고 동생이 끼면서부터는 두 봉지 사서 한봉 반을 끓인다. 반봉지는 남겼다가 다음 반공일에 한 봉지를 보태서 끓인다. 남지기 반봉지가 어찌나 애를 태웠던지...
주황색만 보면 라면이 보였다. 삼양의 한문은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각인이 된다. 몰래 손가락으로 찍어먹던 스프는 짭짤하면서 달달한 것이 왜 그리 손을 못 멈추게 하던지. 결국 야단을 맞고 그 반공일엔 고불고불 라면은 못 먹었다. 퍼런 한자는 꽉 찬 달덩이가 돼 반공일 밤을 채우고 어둠을 먹고 온공일엔 비로 왔다. 처마밑 절구통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시리게 들렸다.
에이씨,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비 오는 날 라면이 진심 그리움의 다른 이름인 것을. 파전보다, 솔(부추)전보다.
이 기억은 스케치에서 데생으로 진화되면서 흑화 된다. 혼자 남은 어느 때에는 라면에 소주도 즐겼었다, 비가 오면.
다음 반공일.
난리 아닌 난리가 났다. 메리 역시 반봉지를 눈여겨 봐 뒀고 비 오는 날 미치도록 그립던 그날을 기억했나 보다. 고즈넉한 그 오후 메리는 기어이 일을 냈다. 슬쩍 훔쳐 널브러졌지만 꼬불이의 허여멀건한 몸뚱이에 곧바로 흥미를 잃었고, 허연 꼬불이는 닭들의 모이로 전락했다. 오후 햇살에 유난히 고운 삼양은 일그러진 채 마당을 굴러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집어드는 손은 떨렸고 뭔지 모를 슬픔에 숨이 콕 막혔다. 봉지의 찌그러진 비명이 허전함으로 전해지고 하얀 알갱이들은 닭부리에서 쪼개지고 있었다.
그날 그 햇살 빛나던 오후는 발치에서 잘게 부서지고, 멎은 가슴을 쪼았다.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라면 봉지 하나를 들고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꺽꺽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놀라서 지게를 벗어 작대기를 거는 둥 마는 둥 뛰어와 우는 이유를 물었지만 꺽꺽대느라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뒤늦게 도착한 할머니의 빠른 눈치 속에서 상황은 정리가 됐지만 꼴짝대는 울음을 안고 잠든 손녀의 빨간 콧방울은 쉬 진정되지 않았다.
그저 굳은살이 투박한 손으로 머리통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할아버지 나이 쉰에 내가 태어났다. 아마도 그 몇 해 뒤에 위암으로 위를 거즘 절반을 절제한 것으로 안다. 그 시절에 그래도 사신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소화기관이 약한 양반이
ㅡ결국 몸에 칼을 댄 것도, 다시는 양껏 음식을 먹지 못하는 형벌을 받은 것도 지은 죄가 많은 게비다~~
하며 황금빛 논을 애잔하게 둘러보기도 했다. 내 할아버지의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그때부터 이미 배부르게 드시는 것을 못 봤다. 늘 조금 드시고 나면 물러 앉아 내 입 들어가는 것에 공갈 입을 벌렸다 닫는다. 김치도 찢고, 상추도 싸지만 입은 공갈로 벌린다. 할머니가 내오는 가마솥 누룽지도 뜨는 둥 마는 둥 후후 불어 결국 내 입에 떠 넣어주고는 또 공갈입을 벌리고 닫는다. 공갈입에 담기는 마음이 진하게 스미는 날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굳이 드시라고 권하지 않았던 것은 모른 체했지만 너무 잔인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할아버지의 채워지지 않는 빈 속을 여우같이 잘 알고 있어서 더 엉큼하게 돌아보지 않고 앞만 봤던 날들이기도 했다.
ㅡ그 거이 그라고 맛있냐...
ㅡ응. 할아버지도 잡숴 봐. 맛있어.
ㅡ자네나 마니 묵소 잉~!
머든지 잘 묵고 건강하기만 하소. 아프지만 말고.
ㅡ밀가리가 머시 조타고 막 묵으라 그요.
안 그래도 당신 달마 소화도 잘 못 시키는 아그를.
한나 맛도 없드만. 머시 마싯다고 저것을 저리묵어싸쿠만.
꼭 밥도 말아 묵으라 잉~
ㅡ잉~~ 할머니.
맛있어, 할아버지. 한 숟가락만 묵어봐. 아이다. 낭중에 밥 말아서 한 숟가락 드시믄 되겠다, 히히.
그런데 그날은 왜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엉엉 울고 지쳐 꺽꺽대고 메마른 눈물로 허걱거릴 정도로 서럽게 잠든 것은 할아버지의 공갈입이 아파서였는지, 달달짭쪼름하게 쪽쪽 훔쳐 빨던 손가락이 애처로웠던 것인지.
그렇게 잠든 다음날
점심으로 라면을 한상 끓여 상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나, 동생이 먹고 밥도 말아먹었다. 부른 배는 마당을 끌어안고 터지는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푸짐했다. 그 시절 라면은 그렇게 귀한 음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면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체 음식이 되었고, 불현듯 내 그분들이 생각날 때면 소주 한 병과 라면 하나 들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라면에 익은 김치를 넣어 끓이면 훌륭한 안주였다.
어둠 속에서 홀로 흔들리던 커튼 사이로 반짝 별들이 보인다
초록별이 반짝인다
어둠 속 빛을 밟아 서면 설움과 외롬을 담은 별이 사라진다
소주를 라면에 말아 마시는 손 끝에 별이 뜬다,
ㅡ박희도 시 라면단상 中에서
나이를 먹으면서 밥 대용으로나 입이 심심하거나 배가 허전할 때, 곧잘 끓여 먹던 라면은 결혼 후 남편이 끓이는 최고의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안 먹는다면서도 끓여 놓으면 곧잘 훔쳐먹는 식품이 됐다. 분명 안 먹는대 놓고는 남편의 라면 냄비에 젓가락을 꼽는 이상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정말 눈치를 보면서도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남편이 안성을 좋아해서 카트를 몰면 꼭 안성을 들렀다. 한아름 안고 돌아와 바구니에 담는다. 부엌은 스텐이 내뿜는 싱크대 바닥으로 찬바람이 몰아칠지라도 안성의 바구니는 빈 바구니로 허전해할 틈이 없었다. 딱히 좋아한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음식이 없었고, 입이 짧아 많은 양을 먹지 않는 내게 그래도 라면은 잘 먹는다면서 남편은 꼭 여분을 더 끓였다. 채워지지 않는 빈 속을 여우같이 잘 알고, 살짝 엉큼하게 돌아보며 달래주던 날들이기도 했다.
시시때때로 날씨는 변덕을 부린다. 갑자기 비가 올 때도 있었고, 앙상한 가지에 잎도 없이 불쑥 철쭉꽃이 피기도 했다. 수업을 하러 간 집 마당에선 불현듯 꽃 몇 송이를 보여 주는 배나무를 멍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진눈깨비처럼 내리는 눈발을 잡고 불혹을 넘겼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춥다고 끓여준 남편의 라면이 맛이 없었다. 남편도 나도 이해하지 못하던 순간이었다. 별로 안 먹고 싶다던 말은 점점 진해지고 깊어져 결국은 맛이 없어, 안 먹을래로 떨어졌다. 남편은 안성을 혼자서 드는 날들이 많아졌고, 나는 그 시간을 서재에서 바카라을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달래주던 시간들이 멀어져 다른 곳을 보기 시작했다. 같은 곳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서도 다른 시간을 지켜내고 있었다, 우리는.
회백색 담장을 치는 바람이 매서운 소리를 내던 어느 날,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ㅡ그 거이 그라고 맛있냐
공갈입을 벌렸다 닫으며 잘 먹었나를 확인하면서 맛없는 것을 맛있다고 먹는 내가 정말로 궁금했을 것이다. 할아버진 진심으로 라면이 맛이 없었을 테니.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진한한 시간이 되고야 안 것이다. 모든 일엔 때가 있듯이 불혹을 넘기고 중반을 가면서야 알게 된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빈 속을 여우같이 알았다고 생각했던 어린 교만이 씁쓸했고, 알지만 모른 척하는 엉큼함이 꽤나 어른스럽다고 여겼던 치기가 이 부끄러움에 비할까. 나이가 들면서였는지 입맛이 변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분명 나는 애정하던 라면의 맛을 잃었고 동무를 잃었지만, 삼십 년도 훌쩍 지나서 할아버지 당신의 마음을 보았다. 달달짭쪼름하다는 나를 위해서 한나 맛도 없는 허여멀건한 밀가리 라면을 한상 끓이신 할아버지와 별미 다며 드신 상할머니의 마음을 보았다. 맛도 없고 입에 맞지도 않지만 한 끼 식사로 어리석고 어린 손녀가 꺽꺽대고 울다 잠드는 것보다야 낫다고 여기신 그 마음의 크기를, 공갈입을 벌렸다 닫으며 행여 흘릴까 걱정을 닦아 내던 그 사랑을 몽매하여 흘려버리다 이 나이가 돼서야 깨달은 것이다.
배우고 깨닫는 데는 한순간도 그칠 것이 없다는 말씀이 부쩍 와닿고, 부끄러움을 새로이 알게 해 주었으니 라면은 그냥 라면은 아니었나 보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삼양라면을 볼 때면 훅하고 붉어지는 것이. 가슴 깊숙한 어느 곳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또 멀리하기엔 이미 가슴에 남아서, 가끔 눈물비를 만드는 것.
ㅡ 그게 그렇게 맛있냐?
하다 하다 인제 컵라면도 집에서 먹게?
ㅡ 맛있어. 컵라면을 냄비에 끓여봐. 별미다?! 더 맛있어. 엄마만 안 먹음 되지. 나까지 강요할 필욘 없지~.
세상 차~암.
*luna한윤영 작가님께 다음 바통 넘겨봅니다. 세비야에서 들리는 라면 뽀개는 소리는 또 어떨지 궁금해서~^^ 슬쩍 부탁드려 봤습니다. 글을 담담하게 풀어내시는 분이시니 기대됩니다~.
루나작가님, 왜 url 복사가 여러번 해도 안되는 걸까욤?
알려주세요 제발~~
https://fishingproductfr.com/@lunahanessey
하릴없이 바빠 이제야 올립니다. 늦은 죄인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