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나를 작가로 만든 작가들

바카라 속의 이름이 사람이 되던 날

by김봄날



오랫동안 작가는 바카라 표지 위에만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름 석 자, 그리고 바카라날개에 실린 몇 줄의 약력. 그게 내가 아는 작가의 전부였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바카라을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했다. 읽어주기 좋은 바카라을 고르고 골라 펼치면, 아이들은 금세 내 목소리를 따라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숨소리마저 작아지던 교실,

다음 장을 넘기기 전 나를 올려다보던 눈동자들.

그 얼굴들을 보며 알았다.

아이들의 배움은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구나. 가르치려 애쓰기보다 이야기를 건네야 하는구나.

그런데 정작 그 이야기를 지은 사람들은 늘 멀리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었을 뿐, 짓는 사람은 아니었다. 작가는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문장을 길어 올리는 사람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이름이 걸어 들어왔다.

학교 강당 무대 위로, 도서관 강연장 앞자리로, 연수실의 마이크 앞으로. 바카라 속에만 있던 이름이 목소리를 갖고, 표정을 갖고, 때로는 농담을 하고, 때로는 말끝을 흐리며 내 앞에 섰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 작가도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어쩌면, 나도.

교사로 24년을 살았다. 그 시간 대부분 나는 읽어주는 사람이었지, 읽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작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하나씩 받아 왔다.


어떤 작가에게서는 쓰는 법을,

어떤 작가에게서는 계속 쓰는 힘을, 어떤 작가에게서는 함께 쓰는 기쁨을.

파워포인트 한 장 없이 세 시간을 이야기로 채우던 작가가 있었고,

바카라 읽어주기 연수에서 만난 목소리를 몇 년 뒤 멘토의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같은 팀에서 원고를 나누던 동료는 어느새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고 있었고, 망설이던 내게 출판사로 가는 길을 일러준 작가도 있었다.


그렇게 받은 것들 사이에서 나도 바카라을 냈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 설명회에서 학부모들 앞에 서서 내 바카라 이야기를 하고, 바카라을 건넨다. 그 자리에 설 때마다 교실의 그 눈동자들이 떠오른다.


이야기에 빠져들던 아이들처럼,

지금 내 앞에 앉은 누군가에게도 내 이야기가 닿고 있을까. 어쩌면 나도 그들에게 '처음 만난 작가'일지 모른다.


이 온라인카지노북은 내가 만난 작가들에 대한 기록이다. 동시에, 그 만남들이 한 사람을 어떻게 작가로 만들어 갔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강연장에서 멀찍이 바라본 작가도 있고, 옆자리에서 함께 원고를 고친 작가도 있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작가도 있다.


바카라 속의 이름이 사람이 되던 날들.

그 이야기를 이제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바카라을 펼치던 그 마음으로.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는지.

바카라장을 덮고 나서 그 이름을 오래 불러 보았던 날.


이 글을 읽으며 당신의 그날도 함께 떠오르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나 역시 '만난 작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