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극(悲劇)을 듣는다는 것

byAgnes

첫 기억은 언니다.

내 언니에게 온 병은, 내 가족에게 닥친 첫 비극이었다.


몇 번의 진료에 동행했다. 여러 번 의사를 만났고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겨우 하는 언니 대신에 "그럼 방사선은......" "그럼 유전자 검사는......" 등의 질문을 했다. 그리고 메모하고 기록해 다른 가족에게 전달했다. 수술이 끝난 후 다학제 회의에도 참석했다. 또다시 꼼꼼하게 병기, 병명, 치료 계획 등을 묻고 기록했다.


다음은 아빠였다.

처음 방문한 동네 2차 병원 의사는, 아빠가 건강검진 결과 자신에게 진료받게 된 것으로 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그래야 정밀 검사 비용이 저렴해진다고. 진료 중에 핸드폰을 들고 진료실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아빠를 내보내고 혼자 남은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의사는 나를 흘끗 보면서 말했다. "4기일 수도 있잖아."


모든 검사결과 사본을 들고 접근성 좋은 3차 병원으로 갔다. 점잖은 의사는 총명한 눈빛으로 말했다. "높은 확률로 암이고, 수술을 할 경우 우측 폐의 1/3이 절제됩니다.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수술 날짜를 잡으세요." 아빠는 "여기서 수술하자"라고 말했지만, 나는 더 큰 병원의 진료를 다시 잡았다. 더 크고 더 유명한 병원으로, 더 유명한 의사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만난 의사는 모든 가능성을 말했다. "암이 아닐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날 퇴원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입원했고 나는 '퇴원이 아니라 수술이 결정되었다.'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회사에 2일간의 연차를 미리 신청했던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나는 회사 앞 호텔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 병원으로 갔다. 그날의 첫 수술 환자인 아빠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탁월하려고 노력한 날들이었다. 피곤하고 힘들었다.


얼마 전 장강명 작가의 소설 <서성이다>를 읽었다. 거기에는 탁월하려고 노력했던 주인공이 나온다. 아내가 아플 때도 탁월하려는 본능을 습관처럼 내보인 작가의 이야기. 그 때문은 아니지만 아픈 아내를 둔 남편은 내내 자바카라하고 아파한다.


지난달 들은 비극은 엄마에 대한 것이었다. 또다시 나 혼자 의사 앞에 앉았고 이번엔 좀 당황했다. 의사는 에둘러 말하고 정확한 답을 회피했지만, 의사가 알려준 지표들은 모두 경도 인지장애에 해당됐다. 엄마는 경도 인지장애 약을 드신 지 이미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퍼즐들이 맞춰졌다. 그래서 그런 거였어. 엄마의 악담의 이유를 찾았다.


나는 또다시 내가 탁월함을 보여야 하는 순간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런데 이번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쳤고, 게다가 탁월의 정체에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엄마와 아빠는 나의 탁월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탁월함이라는 것은 그분들의 만족과 불만족에도, 문제의 해결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은 나에게만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반복해서 든다. 그리고 점점 더 그렇다.


이제 나도 건강검진을 하면 의심 소견, 추적 검사 요망, 재검 필요 등의 멘트가 빼곡해서 요약본만 해도 몇 장이다. 그래도 그런 일은 나 혼자 가면 되고 나 혼자 판단하면 된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매우 홀가분한 일이다. 내가 하면 되니까. 내가 정하면 되니까.


나쁜 게 생겼어요.

높은 확률로 암입니다.

재발의 가능성이.......

나이에 비해 진행이 빠릅니다.


가족의 비극을 듣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탁월을 좇는, 타고난 기질을 버릴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