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Ephesians 3:12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가?
사람이 많아지면 반드시 질서가 필요합니다. 가정에도 질서가 있고, 회사에도 정관이 있으며, 나라에는 법률이 있고, 그 위에는 헌법이 있습니다. 교회에도 질서가 있고, 모임이 커지면 총회와 같은 공적 구조가 생깁니다. 문제는 질서 자체가 아니라, 그 질서가 무엇을 중심으로 세워지느냐입니다.
법이 있어도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면 슬롯는 흔들립니다. 제도가 있어도 양심이 병들면 공동체는 갈라집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진리가 사라지면 사람은 더 외로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정치와 교계, 가정과 슬롯,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어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3장 12절은 그 답을 분명히 말합니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결국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단순한 혈연, 지연, 학연, 이해관계, 조직의 규칙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 은혜, 진리, 사랑입니다.
우리는 아직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본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의 긴장감을 일깨웁니다. 우리는 때로 말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죄와 세상의 흐름 앞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매우 복잡합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경험한 것만 기억하고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SNS와 인터넷, 영상 플랫폼, 인공지능과 정보통신 기술을 통해 한 사람의 삶과 한 시대의 분위기가 입체적으로 기록되고 공유됩니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단순히 글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영상과 데이터와 댓글과 기록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게 됩니다.
SNS는 또 다른 혁명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신문과 방송이 정보를 독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말하고, 누구나 찍고, 누구나 올리고, 누구나 퍼뜨릴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분명 큰 자유를 가져왔습니다. 억울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고, 작은 단체의 활동도 널리 전파될 수 있으며, 교회와 선교단체도 복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커진 만큼 위험도 커졌습니다. 정보가 많아졌지만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표현은 자유로워졌지만 바카라임은 약해졌습니다. 청소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빠르게 세상의 자극과 유혹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휴대폰과 컴퓨터 사용을 어디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감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방치하면 더 위험해지는 시대입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포르노, 음담패설, 야한 사진과 영상, 불법 다운로드, 채팅방 문제가 큰 슬롯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PC방 문화와 게임산업, 인터넷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산업이 생겼지만, 동시에 청소년 보호와 중독 문제, 사생활 침해와 영상 유출 문제가 뒤따랐습니다. 유명 여성 연예인들의 사적 영상 유출 사건들은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때도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칼은 수술 도구가 될 수도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약물은 치료제가 될 수도 있고 중독의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은 복음 전파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죄와 폭력과 음란과 거짓의 확산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마약과 약물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약물은 의학적으로 사용될 때 고통을 줄이고, 극심한 통증이나 신체적 이상을 일정 시간 완화하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사지가 뒤틀릴 만큼 고통받는 사람이 의료적 처방과 관리 아래 안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지혜의 한 영역입니다. 질병을 연구하고, 고통을 줄이며, 생명을 살리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같은 성분이나 물질이 불법 유통되고, 미성년자에게 흘러가고, 범죄에 이용되고, 쾌락과 중독의 도구가 될 때 그것은 슬롯를 무너뜨리는 독이 됩니다. 그래서 경찰과 사법부는 불법 약물의 유통과 범죄 악용을 차단해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바카라임이 있습니다. 특별히 청소년과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슬롯 전체의 바카라임입니다.
대마와 관련된 산업이나 건강식품, 의료적 활용 문제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어떤 회사가 특정 성분을 건강식품이나 의료적 용도로 활용한다고 해서, 그 전체가 무조건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모든 연구와 의료적 사용을 무조건 범죄시하는 것도 지혜롭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분별입니다. 합법과 불법, 의료와 남용, 치료와 중독, 산업과 범죄를 정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경계가 흐려질 때가 많습니다. 인터넷신문과 SNS에는 대마 재배 사진, 약물 관련 정보, 자극적인 기사와 영상이 빠르게 퍼집니다. 학생들은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고, 청소년들은 위험성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유혹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학생들에게 주의를 시키고, 가정과 학교와 교회가 함께 경계해야 합니다.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약물 관련 사건들은 우리 슬롯에 큰 질문을 던집니다. 한 사람의 실패를 단순히 조롱하거나 소비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언론의 보도, 수사의 과정, 대중의 댓글, SNS의 확산, 개인의 정신 건강, 중독 문제, 가족의 고통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건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클릭 수보다 귀하고, 한 사람의 영혼은 여론보다 무겁습니다.
우리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기억해야 합니다. 수사 중인 사람을 이미 죄인으로 단정하고 공개적으로 몰아가는 문화는 위험합니다. 범죄는 엄정하게 수사해야 하지만, 수사 정보는 보호되어야 하고, 개인의 인격과 생명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되,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말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법치의 정신이며, 동시에 성경적 인간관의 기본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중독자는 단순히 비난의 대상만이 아니라 치료와 회복이 필요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범죄자는 바카라임을 져야 하지만, 슬롯는 왜 그런 범죄와 중독이 반복되는지 구조적 원인도 보아야 합니다. 청소년이 무너지는 시대라면, 어른들은 더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과 율법과 시편이 증언한 분입니다. 모세는 장차 오실 선지자를 말했고, 사무엘은 왕정 시대의 문을 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다윗은 왕이면서 시편을 통해 메시아의 그림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흐릅니다. 요한복음 1장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답은 무엇입니까?그것은 단순한 도덕 훈계가 아닙니다.정치적 편 가르기도 아닙니다.조직의 확장만도 아닙니다.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안에서 사람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바카라감에 짓눌린 사람도 은혜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중독에 묶인 사람도 회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도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진 사람도 새 질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슬롯가 갈라진 시대에도 교회는 화해와 진리의 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역시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도 사람이 많아지면 규범이 필요합니다. 작은 가정교회나 기도모임일 때는 관계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모임이 커지면 약속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교회에는 직분이 있고, 회의가 있고, 총회가 있고, 헌법과 규칙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습니다. 세대가 이어지려면 사랑과 질서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랑만 있고 질서가 없으면 방종이 되기 쉽고, 질서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억압이 되기 쉽습니다. 회사에는 정관과 규정이 있습니다. 이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혼란 없이 움직이기 위한 약속입니다. 나라에는 법률과 헌법이 있습니다. 법은 힘 있는 자의 도구가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고 공의를 세우는 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질서는 권력 다툼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총회와 회의는 자리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명예가 아니라 섬김이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와 성도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지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합니다. 몸은 다양한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손과 발, 눈과 귀, 심장과 폐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생명을 위해 움직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주님을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은사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같은 복음 안에 설 수는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까?같은 성격이 아닙니다.같은 재산 수준도 아닙니다.같은 정치 성향도 아닙니다.같은 학벌이나 지역도 아닙니다.우리를 참으로 하나로 묶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1973년 한국에서 열렸던 대규모 전도집회는 한국교회사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복음이 선포되었고, 한국교회는 뜨거운 부흥의 흐름을 경험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집회와 여러 지역 집회에 많은 인파가 모였다는 기록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시대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큰 혼란이나 폭력적 방해가 없었다면, 그것은 사람의 관리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언제나 위험이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사고가 나고, 정치적 갈등이 개입되면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역사 속에는 모임을 방해하고, 집회를 흔들고, 폭력으로 질서를 깨뜨린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수많은 사람이 모여도 복음 안에서 질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신비입니다. 사람은 흩어지면 약하지만, 진리 안에서 모이면 강합니다. 그러나 아무 모임이나 선한 것은 아닙니다. 욕망으로 모인 군중은 폭도가 될 수 있고, 거짓 정보로 모인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는 여론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와 말씀으로 모인 사람들은 한 시대를 살리는 영적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SNS 시대의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쉽게 모입니다. 해시태그 하나로 모이고, 영상 하나로 모이고, 분노 하나로 모이고, 유행 하나로 모입니다. 그러나 빨리 모이는 만큼 빨리 흩어지고, 깊이 없이 판단하며, 바카라임 없이 공격하기 쉽습니다. 온라인 공동체가 진정한 공동체가 되려면 진리와 바카라임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SNS는 혁명이 아니라 혼란이 됩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온라인 문화도 복음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어떤 영상과 댓글과 커뮤니티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하지 마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위험한지 설명해야 하고, 더 좋은 길을 보여주어야 하며, 신앙 안에서 건강한 관계와 의미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부모들의 고충도 이해해야 합니다. 자녀의 휴대폰을 모두 감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내버려 둘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신뢰와 교육과 경계의 균형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기술 사용법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온 것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인생의 방향이 됩니다.
잠언은 마음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화면을 지키는 것보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사람은 계속 다른 중독과 다른 우상으로 이동할 뿐입니다.
마약, 음란, 폭력, 거짓 정보, 명예욕, 권력욕, 돈에 대한 탐심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뿌리는 같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욕망으로 살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히 “이것 하지 말라”는 금지의 목록이 아닙니다. 복음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실 때, 사람은 자기 욕망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됩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은 “그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두려움과 죄바카라감과 불안이 우리를 붙잡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담대함과 확신이 생깁니다. 이 담대함은 교만이 아닙니다. 이 확신은 자기 의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다.가정도 이 믿음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교회도 이 믿음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슬롯도 이 믿음의 정신을 통해 더 인간다워질 수 있습니다.정치도 권력욕이 아니라 공의와 섬김을 배워야 합니다.사법도 보복이 아니라 정의와 인권의 균형을 세워야 합니다.언론도 클릭 수가 아니라 진실과 생명에 대한 바카라임을 가져야 합니다.SNS 사용자도 자유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말의 무게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까?법도 필요합니다.제도도 필요합니다.교육도 필요합니다.경찰과 사법부의 역할도 필요합니다.부모의 감시와 학교의 지도도 필요합니다.교회의 권면과 목회자의 설교도 필요합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바르게 세우는 중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은 결국 힘 있는 자의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기술은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문화는 자극은 주지만 생명은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 없는 자유는 결국 더 강한 중독으로 사람을 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의 자유는 사람을 살립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묶으시는 분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서로에게 묶으시는 분입니다. 십자가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고, 수평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는 능력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 되게 하신 복음은 오늘도 세대와 계층과 지역과 정치 성향과 상처의 벽을 넘어 사람을 하나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 됨은 무조건 같은 생각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적 하나 됨은 진리를 포기한 타협이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을 정죄하고 파괴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하나 됨은 진리와 사랑이 함께 갈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었습니다.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입니까? 더 빠른 인터넷입니까? 더 좋은 스마트폰입니까? 더 많은 영상과 음악과 게임입니까? 물론 기술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분별력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힘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죄와 싸우되 사람을 사랑하는 태도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정치와 교계가 하나 되려면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섬김의 언어를 회복해야 합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자기 지지층과 반대층으로만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교계 지도자는 성도를 자기 세력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는 사람을 동원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자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군림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공동체의 기준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성공이 아닙니다. 큰 건물을 세웠다고 반드시 부흥은 아닙니다. 조회 수가 많다고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부흥은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 됨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진짜 질서는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통제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발적으로 세워지는 순종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에베소서 3장 12절 앞에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담대함으로 나아갑니다.확신으로 나아갑니다.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갑니다.분열이 아니라 화목으로 나아갑니다.정죄가 아니라 회복으로 나아갑니다.혼란이 아니라 질서로 나아갑니다.
SNS 혁명의 시대, 마약과 중독의 시대, 청소년 정신 건강의 위기, 가정의 고민, 법과 제도의 한계, 교회와 정치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가?
돈은 사람을 잠시 묶을 수 있습니다.권력도 사람을 잠시 묶을 수 있습니다.분노도 사람을 잠시 묶을 수 있습니다.유행도 사람을 잠시 묶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것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이해관계가 끝나면 흩어지고, 분노가 식으면 무너지고, 유행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영원합니다.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이 죄인을 새롭게 합니다.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시대를 넘어 사람을 세웁니다.오직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만이 교회를 교회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예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가정은 예수 안에서 사랑과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교회는 예수 안에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슬롯는 예수 안에서 생명의 가치를 배워야 합니다.청소년은 예수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해야 합니다.부모는 예수 안에서 지혜와 인내를 구해야 합니다.지도자는 예수 안에서 겸손과 바카라임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까?정답은 분명합니다.우리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을 때, 우리는 흩어지지 않습니다.우리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일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우리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일 때, 우리는 서로를 이용하지 않고 섬기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우리의 죄를 가지고 나아갑니다.우리의 두려움을 가지고 나아갑니다.우리의 가정 문제를 가지고 나아갑니다.우리 슬롯의 중독과 혼란을 가지고 나아갑니다.교회의 연약함과 지도자의 바카라임을 가지고 나아갑니다.그리고 주님 앞에서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소서.사람의 욕망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묶어 주소서.거짓 정보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묶어 주소서.분노와 정죄가 아니라 회개와 회복으로 묶어 주소서.정치적 편 가르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묶어 주소서.SNS의 소음 속에서도 복음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약물과 중독의 시대 속에서도 생명의 길을 보게 하소서.청소년과 다음 세대를 지켜 주소서.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이것이 우리의 담대함입니다.이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이것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