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第1章 : 찢겨진 비단 (破絹) — [後半部]
서준은 자신의 두 눈을 유심히 비볐다.
지하 표구실의 낡은 알몸 전구 불빛이 일그러지며 뇌리를 관통하던 은빛 전율은 이내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눈앞에 누워 있는 관음보살도를 바라보는 서준의 시야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도술이나 환영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수만 장의 고지와 비단을 만지고, 석채 안료를 갈아 넣으며 뼈에 새겨넣은 장인으로서의 감각과 집념이 극도로 응축되어 손끝에서 '시각'으로 터져 나온 결정체였다.
서준의 두 눈에는 불화 표면을 덮고 있는 사소한 촛농 껍질 너머, 안료가 이중으로 덧칠해진 미세한 층적(層積)의 구조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건…… 100년 된 관음보살도가 아니다.'
서준의 손끝이 떨려왔다.
불화 겉면에 칠해진 붉은 주사 안료와 아교의 비율은 불과 20~30년 전에 쓰이기 시작한 현대산 화학 합성 아교의 성분을 머금고 있었다. 겉면의 촛농과 향 연기 때 역시 촛불로 자연스럽게 그을린 것이 아니라, 화학 가열기로 일부러 그을음을 입힌 인위적인 세월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서준을 진짜 놀라게 만든 것은 그 겉면의 가짜 껍데기 아래 갇혀 있는 '진짜 속살'이었다.
서준은 핀셋을 내려놓고, 보수사들이 쓰는 가늘고 차진 대나무 칼을 집어 들었다. 그는 불화의 오른쪽 하단, 관음보살의 연화대 좌석 아래 덧칠해진 주사 안료 틈새로 날을 살그머니 밀어 넣었다.
'스윽―.'
겉면의 조잡한 붉은 안료가 벗겨져 나가자, 그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300년 전 고려 말~조선 초기의 지극히 정교한 먹선(墨線)의 궤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서준의 입에서 억눌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지방 사찰의 불화가 아니었다. 300년 전 대선사가 먹을 갈아 정밀하게 그어 내린, 잃어버린 조선 초기의 희귀 괘불탱의 일부이자 최고급 비단 바탕에 그려진 진짜 국보급 미공개 회화였다.
누군가가 이 위대한 진품 회화의 표면에 조잡한 현대산 붉은 안료를 덮어씌우고, 촛농 그을음을 입혀 '흔한 지방 사찰의 100년 된 삼류 불화'로 위장시켜 놓은 것이었다.
'진품을 일부러 싼값의 가짜처럼 위장해 고미술 시장으로 유출하려 한 거다!'
서준은 가쁜 숨을 내쉬며 덧칠해진 안료의 결을 따라 대나무 칼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손끝의 감각이 안목으로 개안하며 300년 전 화승(畫師)이 붓을 잡고 숨을 참아가며 먹선을 그어 내리던 그 정직한 장인의 호흡이 서준의 손가락을 타고 아늑하게 전해져 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읏……!'
갑자기 눈앞이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검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가뭇없이 아득해졌다.
오른쪽 눈의 시야 구석진 곳이 찰나의 순간 까맣게 꺼져 내리더니, 방 안의 불빛이 굴절되며 극심한 두통이 뇌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서준은 손으로 눈을 감싸 쥐며 작업대에 엎드렸다.
손끝의 감각을 '안목'으로 개안하여 시각과 완벽하게 일합을 이루는 그 순간, 제 몸의 시력이 조금씩 상쇄되어 깎여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보기 위해 자신의 두 눈을 대가로 바쳐야 하는 장인의 서글픈 경고였다.
"하아…… 하아……."
서준은 한참 동안 숨을 헐떡이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오른쪽 눈 시야의 가장자리에 아주 미세한 먹구름 같은 어둠의 잔상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서준은 자신의 눈에 찾아온 이상 징후보다, 드러난 불화의 덧칠 공법에서 소름 돋는 진실을 먼저 포착하고 있었다.
진품 위에 조잡한 안료를 덮어씌우고, 특수 화학 배접지로 산화 처리를 하여 감정단의 눈을 속이는 이 교묘하고 신출귀몰한 수법.
"이건…… 3년 전 그 수법이다."
서준의 목소리가 지하 표구실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바르르 떨렸다.
3년 전 인사동 수장고에서 그를 완벽하게 매장시켰던 <경교명승첩> 위작 사건. 당시 감정위원단은 서준이 진품 비단을 빼돌리고 현대산 안료로 짜깁기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상은 누군가가 진품의 표면에 교묘하게 화학 안료를 덧칠해 감정 시약 반응이 일어나도록 조작했던 것이었다.
3년 전 서준을 매장시켰던 그 가혹한 조작 수법과, 오늘 이 감은사 관음보살도 표면에 칠해진 조작 수법은 단 1mm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이것은 서준 개인의 실수가 아니었다.
문화재 감정 권위를 쥔 자들, 미술품 경매업자, 그리고 그 뒤에서 진품과 가짜를 주물러 수백억 원의 거액을 챙기는 거대한 문화재 카르텔의 조직적인 범죄였다. 그리고 그 공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스승 이상현의 문하에서 서준과 함께 십수 년간 안료와 배접 공법을 익혔던 동문, 강민우.
"민우 형…… 결국 당신이었어."
서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바닥 마디마디에 새겨진 정직한 장인의 굳은살 아래로,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분노와 억울함의 불꽃이 뜨겁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짓밟힘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지하 골방으로 내몰렸던 청년 서준.
자신을 매장시킨 카르텔의 거대한 음모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그 밤, 서준은 손에 쥐어진 낡은 대나무 칼과 감나무 붓을 다시금 단단하게 고쳐 쥐었다.
비록 진실을 밝혀낼 때마다 자신의 시력이 조금씩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갈지라도, 거짓으로 세워진 가짜들의 세상을 향해 정직한 장인의 손끝으로 맞서겠다는 거룩한 각성이 혜화동 지하 표구실의 짙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