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 속의 고요

수필

by산들강바람

산에 오르면 조용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도시의 소음을 등지고, 사람들의 말소리와 엔진 소리와 스마트폰 알림음으로부터 멀어지면 마침내 고요가 찾아올 것이라고. 그 믿음을 품고 나는 오늘도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걸어 오른다. 발아래 돌멩이들이 자그락자그락 비켜나고,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솨아, 길을 열어준다. 올라갈수록 도시의 냄새가 옅어지고, 흙과 이끼와 젖은 나무껍질의 냄새가 짙어진다. 이 냄새만으로도 이미 다른 세계다.


산 중턱 너럭바위 위에 자리를 잡는다. 눈을 감는다. 숨을 고른다. 이제 명상이 시작될 참이다.

그때, 찌르르릉. 어딘가에서 박새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한다. 뒤이어 까마귀 한 마리가 깍깍깍, 능선 너머로 제 존재를 선언한다. 멀리 서는 뻐꾸기가 뻐꾹뻐꾹, 박자도 맞추지 않은 채 끼어든다. 고요를 찾으러 산에 올랐더니, 산은 생각보다 훨씬 부산하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 소리들이 겹치고 엇갈리며 제법 복잡한 층을 이룬다.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이름 모를 벌레의 떨림 소리까지 더해지면 산은 하나의 거대한 악단이다. 지휘자도 없이, 악보도 없이, 그러나 멈추지도 않고.


눈을 뜨고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 이 소란 속에서 대체 어떻게 고요를 찾는다는 말인가.

오랫동안 산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깊은 산중 암자에 홀로 앉아 몇 달씩 지내는 스님들, 동굴 속 토굴 수행자들. 그들도 이 새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아니, 더 듣지 않았을까. 문명의 소음 없이 자연 소리만 남으면, 오히려 그것이 더 또렷하게 귓속으로 파고드는 법이다. 이른 새벽 암자의 고요 속에 울리는 새 한 마리의 울음은, 도시 한복판의 경적 소리보다 더 선명하게 의식을 건드린다. 그렇다면 그들이 찾은 고요는 소리의 부재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이었을 터이다.


나는 오래 앉아 그 의문을 굴린다.

어쩌면 고요란, 소리가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소리에 맞서기를 멈춘 자리에 깃드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새소리를 끊으려 했다. 명상의 적으로 여기고, 의식의 문을 걸어 잠그려 했다. 그러니 소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닫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열린 집 안을 지나가는 소리보다 늘 요란한 법이다. 저항이 소리를 키웠다. 내가 싸우는 동안 새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울었고, 소란을 만든 것은 새가 아니라 나였다.


눈을 다시 감는다. 이번엔 다르게 해 본다. 박새 소리가 들리면, 들린다. 뻐꾸기 소리가 들리면, 들린다. 바람이 솔가지를 건드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 사각사각. 까마귀가 다시 깍깍 울면, 깍깍. 그것들을 붙잡지도 않고, 밀어내지도 않는다. 소리가 귀에 닿았다가 그냥 지나가게 둔다.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붙들지 않으면 모든 것은 그냥 흘러간다.


신기하게도, 그러자 조금씩 달라진다. 새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더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소리는 소리대로 울리고, 나는 나대로 여기 있다.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어떤 거리가 생긴다. 그것이 고요였다. 소리 없음이 아니라, 소리와 나 사이의 평화.


산에서 수행하는 이들이 찾는 것도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소리를 막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과시키는 법, 바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제 몸을 지나가게 허락하는 법. 그들이 오랜 세월 닦아온 것은 방음벽이 아니라 투명함이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유리처럼, 세상이 그냥 통과해 가는 마음. 그 투명함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새벽을, 얼마나 많은 봄과 겨울을 홀로 앉아 보냈을까.


햇살이 소나무 사이로 기울어진다. 자그락자그락, 솔방울 하나가 바위 위로 굴러 떨어진다. 박새는 여전히 찌르르릉, 쪼르르릉.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소리들을 그냥 듣는다. 이제는 싸우지 않는다. 새들도 나를 이긴 것이 아니고, 나도 새들을 정복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같은 산 안에 있다.


오늘 나는 고요를 찾으러 산에 왔다가, 고요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고요는 소리가 없는 곳에 있지 않다. 소리를 있는 그대로 두는 마음 안에 있다. 무언가를 끊으려 할수록 그것은 더 크게 울린다. 그러나 내버려 두면, 세상은 스스로 제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문득, 어린 시절 냇가 둑길에 홀로 앉아 물소리를 듣던 기억이 떠오른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세상 전부였는데, 그 안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미 고요 안에 있었다. 아이는 소리와 싸우지 않는다. 그냥 듣고, 그냥 있는다. 언제부터 나는 고요를 얻어야 할 무언가로 여기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자연 앞에서조차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태도로 앉게 되었을까.


어쩌면 나는 잃어버린 그 아이의 마음을 되찾으러 오늘도 산에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았던, 아무것도 붙들지 않았던, 새소리 속에서도 그냥 고요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오러. 산은 오늘도 변함없이 시끄럽고, 나는 오늘도 그 소란 속에서 조금씩 조용해지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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