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밤, 상상의 나래는 치유가 된다
어젯밤도 꼬박 밤을 지새웠다.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뜨거운 욕망이 상상의 나래를 타고 밤새 방 안을 유영했다. 상담학을 공부하고, 그 도구들을 삶에 활용하며, 글로 풀어내고 싶은 갈증. 지금 내 시간의 대부분은 ‘나’라는 사람을 돌보고 정화하는 일에 할애되어 있다. 마치 내가 나에게 가장 정성 어린 첫 번째 내담자가 된 것처럼.
인생을 걸어오며 우리는 저마다 마음의 생채기를 하나쯤 안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트라우마라 부른다. 때로는 번아웃으로, 때로는 우울과 불안, 불면, 혹은 이름 모를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병원에서 내려지는 수많은 진단명은 때로 우리를 그 틀 안에 가두어버린다. “나는 우울증 환자야”, “나는 공황 장애를 겪고 있어.” 우리는 그 진단 뒤로 숨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진단은 판결이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그 나오는 순간이 치유의 시작임을 알지만, 혼자 힘으로 문을 열기란 참으로 버겁다. 그래서 때로는 절망적인 선택을 앞두고 멈춰 서기도 한다. 그 결정이 실행되기 전, 우리에겐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하다. 마음의 응급실이 필요한 이유다.
외국의 응급실에는 정신과 구역이 따로 있다고 한다. 몸의 상처만큼이나 마음의 위급함도 손을 뻗으면 즉시 닿을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상담 센터들이 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세밀하고, 더 깊숙한 곳까지 가닿는 ‘마음의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이 간절함이 하루빨리 제도화되기를, 더 이상 늦지 않게 실행되기를 바라본다.
나는 그 응급 처치의 도구로 '예술'을 택했다. 창작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일이며,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여는 가장 부드러운 열쇠다. 글쓰기, 바카라, 그림바카라, 노래, 연극, 그림, 춤… 이 모든 예술적 매체는 내담자의 담담한 속내를 시원하게 뚫어주는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해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까. 마음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공부하고 싶은 것은 많고, 마음은 이미 저 앞을 달리고 있어 정작 내 안의 강물은 고요함을 잃고 소용돌이친다.
이제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지금의 이 불안과 조급함조차 나를 돌보는 과정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 보자고 다짐한다. 밤새 펼쳤던 상상의 나래를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나라는 사람의 마음 응급실에 부드러운 조명을 켜두어야겠다.
이제 찻잔을 내려놓고 창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