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가을을 전하고 싶었다

가을바람을 따라 걷다가 자꾸 멈춰 선 날

by쉼표JEONGSEON


그냥 걸었다.

함께 걷자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딱히 어디로 가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가을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길가 담벼락 밑에 풀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기들끼리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쪼그만 것들이 모여 앉은 모양새가 영락없는 수다판이었다.

“너희들 여기서 뭐 해?”

“응, 우리 수다 떠는 중.”

내 눈에는 꼭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말을 걸어 놓고 보니, 그들도 별로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자기들 이야기가 더 재미있나 보다.

“그래, 그럼 사진이나 한 장 찍자.”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 꽝 찍어 놓았다. 수다판에 끼지는 못했어도 사진첩에는 데려왔다.

수다스런 친구들 네잎클러버-20261022_134118374.jpg

조금 더 걷다가 전화 부스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문득 누군가에게 가을을 전해 주고 싶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담벼락 밑에서 만난 수다스러운 풀잎들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여기 가을이 와 있어.”

그렇게 말을 꺼내면 그다음 이야기는 저절로 나올 것 같았다.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할 말은 있었다.

전화 부스 옆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나란히 서서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아직 여기 있는데.
조금 더 있어도 될 텐데.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괜히 지나온 시간까지 생각했다. 계절은 가끔 이렇게, 걷던 사람을 지난 시간 앞에 세워 놓는다.

전화기 부스와 은행나무 _20261022_181422683.jpg

다시 걸었다.

꽃집 앞에는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한참 들여다보니 지나가는 가을이 아쉬운 얼굴들 같았다. 어쩌면 아쉬운 쪽은 나였을 텐데, 나는 자꾸 꽃들에게 내 마음을 물었다.

너희도 아쉽니.
이렇게 피어 있는데 가을이 간다니.

그 꽃들도 사진첩에 접어 두려고 한 장 찍었다. 나중에 펼쳐 보면 이날의 꽃집 앞에 잠깐은 다시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지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던 꽃집앞 꽃들-20261022_181823166.jpg

가을 열매도 나랑 이야기하자고 했다.

가을 열매도 나랑 얘기 하자고 하고-20261022_182202093.jpg

조금 더 가니 하얗고 작은 꽃들이 또 발걸음을 붙잡았다.

내 발걸음을 자꾸 붙잡고 얘기하더라 -20261022_182241909.jpg

이쪽에서도 잠깐.
저쪽에서도 잠깐.

얘들은 자꾸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서 있는 동안에는 멈춰 들여다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가야 할 곳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작은 꽃들 앞에 조금 더 서 있었다.

이렇게 피어 있는데.
가을이 다 가는데.

그러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풀잎들에게는 관심도 못 받고 돌아섰으면서, 이제는 꽃들이 나를 붙잡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혼자 걷는 길에서도 나는 제법 바빴다. 말을 걸었다가, 대답을 상상했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함께 걷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내가 자꾸 멈추는 바람에 몇 걸음 앞서 가다가 돌아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손짓했겠지.

“잠깐만. 여기 이것 좀 봐.”

사진첩을 열어 보니 풀잎도, 전화 부스도, 은행나무도 들어와 있었다. 꽃집 앞의 꽃들과 가을 열매, 하얗고 작은 꽃들까지.

그냥 걸으러 나갔는데 가을을 몽땅 담아 왔다.

가을낙엽들이 우리집에 놀러와 쇼파에 들어 누웠다. _20261021_111239197.jpg

사진을 한 장씩 넘겨 본다.
전화 부스 앞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아직 남아 있다.

여기 이것 좀 봐.
내가 어제 만난 가을이야.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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