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언어를 찾아, 작은 이야기를 담는 사람
아침 커피가 식어 간다. 화면 속 남의 글을 세 번째 읽는 중이다. 댓글 한 줄을 쓰기 위해서다.
한 번 읽으면 이야기가 보이고, 두 번 읽으면 문장이 보이고, 세 번 읽으면 그 문장을 쓴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그 마음에 닿는 따뜻한 말 한 줄을 찾느라, 내 커피는 늘 식는다.
어릴 적 나는 바카라을 좋아했다. 좋은 글귀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작은 메모장을 꺼내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다. 남의 문장을 내 손으로 다시 써 보면, 그 문장이 조금은 내 것이 되는 것 같았다.
메모장 귀퉁이에는 몰래 적어 둔 수줍은 말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삶은 메모장보다 납기를 먼저 내밀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늘 저만치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문장을 옮겨 적는 사람이었지, 스스로 문장을 짓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바라보며 부러워만 했다.
십 년도 더 지난 꿈이 하나 있다. 그런데 지금도 어제 꾼 것처럼 생생하다.
해 질 무렵이었다. 수평선 앞으로 희미한 언덕 하나가 보였다. 그 언덕에 나이 지긋한 분이 한 분 서 계셨다.
나는 그분과 나란히 걸었다. 그분이 물으면 내가 대답했고, 내가 물으면 그분이 대답했다. 꿈속인데도 나는 분명 내 입을 열어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입에서 이런 기도가 흘러나왔다.
"학자의 혀를 주세요."
말이었는지 기도였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깨어나서도 한참 그 말을 곱씹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혀를 달라는 걸까. 똑똑하고 근사한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 말은 이사야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이사야 50:4, 개역개정)
학자의 혀는 똑똑한 말을 자랑하는 혀가 아니었다. 지친 사람을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일으켜 세우는 혀였다. 그리고 그 깨우침은 아침마다 온다고 했다.
지금 나는 아침마다 글마실을 다닌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찾아 읽고, 마음에 닿은 문장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서툴더라도 다정한 인사를 남긴다.
그림 속 유다의 뒷모습을 읽다가 내가 앉은자리를 돌아보았다. 공원을 달리던 낯선 사람의 회색 티셔츠를 읽다가 내 글이 누군가의 온기 어린 뒷모습이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렇게 남의 글을 읽다 보면, 내 안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말들이 하나씩 깨어난다.
40년 동안 삼켜 둔 말들이다. 납기 앞에서 미뤄 둔 말, 낯선 나라 말 앞에서 끝내하지 못한 말, 웃음 뒤에 남겨 둔 말.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 말들이 남의 문장을 디딤돌 삼아 내게로 돌아온다.
이 가을, 나는 언어의 깊이와 너비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언어가 사람이 쉬어가는 집이 된다고. 그때 내가 꼭 붙잡았던 문장은 두 개였다.
“너는 충분히 애썼다.”
“지금 모습이어도 괜찮다.”
돌아보면 그 두 문장이 꿈속 기도의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자의 혀는 거창한 진리를 가르치는 혀가 아니었다. 이렇게 짧고 다정한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고단한 마음을 가만히 쉬게 해 주는 혀였다.
그래서 나에게 이름 하나를 붙여 주었다.
소담자(小談者). 작을소(小), 말씀 담(談), 사람 자(者). 작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큰 목소리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문장 곁에 작은 말 한 줄 살포시 놓아두는 사람. 소리 내어 부르면 '작게 담는 사람'으로도 들리고, 우리말 '소담하다'의 넉넉함도 슬며시 묻어난다. 작지만 넉넉하게. 그게 내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메모장에 남의 문장을 옮겨 적던 아이는, 이제 남의 문장에 따뜻한 답을 적는다. 언젠가 누군가도 내 문장 하나를 자기 메모장에 가만히 옮겨 적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다. 부러워만 하던 그 자리에 내가 앉아, 잃어버린 언어들을 다시 찾게 될 줄은.
그래서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소담자
메모장 귀퉁이에
몰래 적어 둔 꿈 하나
해 질 녘 언덕에서 빌었던
학자의 혀 하나
이제야 알겠네
그 혀가 할 말은
너는 충분히 애썼다
지금도 괜찮다
작은 말 한 줄
가만히 담아 건네네
함께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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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람을 쉬게 하는 집이 된다고 믿게 된 이야기입니다.
작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으로 쓴 시 온라인카지노북 「언어의 소담자」에 매주 수요일 놓아두고 있어요.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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