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밤을 지나
부다페스트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9월 19일 새벽 한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원래 일정은 체코 국경 근처의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빈을 거쳐 부다페스트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잘못 입력했고, 우리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잘츠부르크까지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기왕 잘츠부르크까지 온 김에 모차르트 생가를 둘러보고 할슈타트에도 들렀다. 예정에 없던 곳이었지만 호수와 산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의 풍경은 오래 눈에 남았다.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만나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대신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길은 멀어졌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몇 시간 뒤 아침, 일행들과 숙소를 나왔다. 야외에 테이블을 내놓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온라인카지노를 먹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전날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먼 길을 돌아온 뒤라 그런지, 가만히 앉아 거리를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체코에서 보낸 며칠과는 도시의 분위기가 달랐다. 프라하와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성과 성당, 돌길과 오래된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골목을 걸을 때면 오래된 도시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거리의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식당과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여행지라기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은 다뉴브강 주변을 많이 걸었다. 강변에는 인도와 자전거길을 구분하는 노란 선이 그어져 있었고 길을 따라 가로수가 이어졌다. 이번 여행에는 관광지의 보행환경과 수변 안전을 살펴보는 연수 목적도 있었다. 걷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동선이 어디에서 만나는지, 강 가까이 이어지는 길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눈여겨보았다.
주말의 강변에는 밤늦도록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강가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식당 테이블에서 바라보았던 도시의 사람들이 밤에는 강변으로 자리를 옮긴 듯했다.
강 건너 국회의사당에 불이 켜졌다. 건물의 윤곽이 금빛으로 드러났고, 불빛은 검은 물 위에 길게 비쳤다. 물에 비친 빛의 가장자리는 건물처럼 반듯하지 않았다. 우리 네 사람도 강을 뒤로하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강가로 나갔다. 밤에 물 위로 길게 늘어졌던 불빛 대신 건물과 하늘이 강물에 비쳤다. 늦게까지 사람들이 머물던 강변은 한결 한산했다. 국회의사당 주변을 지나 머르기트 다리 쪽으로 걸었다.
그곳에 검은 추모비가 있었다. 돌에 한국어가 새겨져 있었다.
2019년 이 강에서 일어난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였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탄 배가 사고를 당한 바로 그 강이었다. 검은 돌에는 한국어와 헝가리어로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글이 새겨져 있었고, 그 뒤로 머르기트 다리와 강이 보였다.
전날 밤에는 강 건너 국회의사당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같은 강을 앞에 두고 돌에 새겨진 글을 읽었다. 우리가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강변 한쪽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과 기억이 남아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작성한 결과보고서에는 수상관광의 안전 안내와 비상대응 체계가 중요하다고 적었다. 현장에서 무엇을 보았고, 부산의 관광지와 수변공간에 무엇을 적용할 수 있을지 정리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보고서에는 그런 문장들이 남았다.
그런데 여행 사진을 다시 볼 때면 눈길은 다른 곳에 머문다. 불을 밝힌 국회의사당을 보면 밤늦도록 강변에서 들리던 음악 소리가 생각난다. 강변 사진을 넘기다 보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아침도 함께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