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털털이

사라진 것들에 대하여

by박계장

사무실 메신저에 쑥 절편을 돌린다는 쪽지가 떴다. 시골 다녀오는 길에 뜯어 만든 것이니 맛이나 보라는 부속실 직원의 알림이었다. 흙냄새와 풀냄새 사이 어디쯤, 쌉싸름하면서도 코끝을 징하게 울리는 진한 쑥 향기였다. 손가락 두 개를 겹친 듯한 크기의 떡 한 조각을 입에 넣자, 잊고 있던 질감 하나가 혀를 치고 올라왔다.


쑥털털이였다. 어머니는 그것을 그렇게 불렀다. 쑥버무리나 쑥범벅 같은 매끄러운 이름 대신, 털털하게 만들어 털털하게 내어준다는 그 투박한 명칭이 나는 지금도 더 정확하다고 믿는다.


1970년대 부산 용호동은 도시라 하기엔 포장되지 않은 흙먼지가 앞마당까지 들이쳤고, 촌이라 하기엔 다닥다닥 붙은 시멘트 담벼락의 숨소리가 너무나 빽빽했던 경계의 동네였다. 봄기운이 돌면 누군가 밭 언저리나 산 아래에서 뜯은 쑥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부엌 한쪽에 무심히 던져두고 가곤 했다. 습기를 머금은 신문지 겉면에는 흙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고, 엉성하게 말린 종이 틈새로는 쑥의 알싸한 향과 젖은 흙냄새가 비집고 나왔다.


부엌이라야 연탄아궁이 하나와 베니어판 찬장이 전부인 비좁은 단칸방 살림이었다. 그 좁은 자리에서 서른도 안 된 젊은 어머니는 자식 넷을 앞에 두고 쑥을 버무렸다. 외할머니의 손길을 곁눈질로 배워온 설익은 솜씨였다. 어머니는 어린 쑥을 우물가에서 흙을 털고,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우물물에 씻어낸 뒤 밀가루를 넉넉히 묻혔다. 그러고는 가루가 너무 뭉치지 않게 무심히 툭툭 털어냈다. 털털하게 만들어 털털하게 내어준다는 그 이름이 어머니의 그 무심한 동작에서 배어 나왔을 것이라 이제야 짐작한다. 요즘처럼 찰진 쌀가루가 아니라, 입안에서 겉도는 밀가루의 텁텁함이 그 시절의 기본값이었다.


번듯한 전용 찜기 같은 것은 없었다. 검게 그을린 큰 솥 바닥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어머니가 ‘삼발이’라 부르던 날개 달린 쇠 받침을 벌려 세웠다. 그 위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쑥을 수북이 얹어 연탄불에 올렸다. 열기를 받은 솥뚜껑이 달그락거리며 들썩이고, 그 틈새로 수증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좁은 부엌은 금세 뿌연 김과 쑥 향으로 가득 찼다. 뚜껑을 여는 순간 얼굴로 훅 끼쳐 오던 뜨거운 열기. 입안에서 거칠게 씹히던 쑥의 질감은 세련되지 않았으나 정직했다. 그것은 맛이기 이전에, 어린 엄마가 제 엄마를 흉내 내며 완성해가는 간절한 생활이었다.


그 투박한 질감의 기억은 방학마다 찾아가던 감전동 큰집의 밥상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던 그 집의 좁은 마당과 옥상에는 어른 허리만 한 커다란 고무통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뚜껑을 덮어둔 고무통 주위로는 언제나 젓갈과 짠지가 천천히 익어가는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가 맴돌았다. 어린 입맛에는 하나같이 낯설고 짭짤해, 찬물에 밥을 말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해 방학, 그 비릿한 마당 한구석에서 건져 올린 검은빛에 가까운 보리 고추장이 밥상에 올랐다. 엿기름의 매끄러운 단맛 대신, 보리쌀가루의 성근 입자가 혀끝에서 껄끄럽게 만져지던 그 고추장 속에는 산초 잎이 켜켜이 박혀 있었다.

뜨거운 쌀밥 위에 고추장을 조금 떠 쓱쓱 비빌때면, 그 속에 검푸른 산초 이파리가 여린 가지에 몇 장씩 매달려 나오곤 했다. 그것을 밥과 함께 우물우물 씹으면 특유의 화한 향이 혀끝을 스치며 입안에 은은하게 번졌다. 처음엔 그 향이 조금 낯설기도 했으나, 이내 보리쌀가루의 텁텁함을 씻어내며 입안을 개운하게 갈무리해 주었다. 고추장에 파뭍혀 있던 산초 잎은 쌀밥 본연의 단맛과 장의 구수함을 더 선명하게 하였다.

이제 그 풍경과 맛들은 하나둘 끊겼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리 고추장을 주문해 보아도, 시장에서 파는 쑥 털털이를 사 먹어 보아도 혀는 이내 실망하고 만다. 요즘의 것들은 너무 매끄럽고 지나치게 친절하다. 보리 알갱이는 흔적도 없이 갈려 있고, 쑥털털이는 쌀가루의 점성에 밀려 떡처럼 찰지다.

맛이 다른 것이 아니다. 그 투박한 질감을 만들어내던 '손'들이 사라진 터 일 것이다. 연탄불 위에서 수증기를 견디며 쑥을 버무리던 젊은 어머니의 손과, 산초 잎을 고추장 단지에 박아넣던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 그 손들은 계절을 거스르지 않았고, 수고로움을 피하지 않았으며, 세월의 거친 결을 음식 속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봄은 올해도 어김없이 왔고, 쑥은 파랗게 돋아났다. 하지만 솥뚜껑을 열 때의 그 뜨겁고 텁텁한 공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쑥은 해마다 돌아오는데, 그 손들은 그렇지 않다. 사라진 것은 맛이 아니라, 그 무심하고도 투박한 생의 감각이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세 부부 이야기(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