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욕심은 화를 불렀다.
온통 쥐 천지다.
논두렁이고 마루 밑이고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먹성은 어찌나 좋은지 장정 한 사람 몫의 식량은 너끈히 해치웠다.
가을걷이가 끝나도 우리 집은 식량이 늘 부족했다. 이삭을 줍고, 타작 끝난 마당에서 낟알을 한 톨이라도 더 모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었지만 형편이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겨우내 온 식구가 먹을 벼 다섯 섬을 마련하고도 빠듯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애써 거둔 곡식을 축냈다.
논두렁에 굴을 파고 살면서 떼로 몰려다니며 먹어치웠다. 벼 이삭을 잘라 가고, 볏단 위에 올라앉아 먹기도 했다. 볏섬에 구멍 내고 낟알을 빼먹는 솜씨는 놀랍다. 배를 채우고 돌아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었다. 이삭을 끊어 물고 갔다. 겨울나기 비축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겨울이면 집안까지 기웃거렸다.
뒷방에는 커다란 고구마 통가리가 있었다. 시월 중순에 캐어 저장해 놓은 고구마가 가득했다. 부족한 쌀을 대신해 겨우내 우리 가족의 끼니를 연명할 양식이었다.
쥐들이 그것을 그냥 둘 리 없었다. 마루를 오르내리더니 여닫이문 아랫부분 격자무늬 창살에 구멍을 뚫어 길을 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창호지를 두세 겹씩 덧대어 막았다. 하지만 녀석들은 돌아가며 또 구멍을 뚫었다. 그 집요함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밤이 되면 언제 들어왔는지 통가리 속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찍-찍, 찌지-직.’
노래 부르는지, 떠드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찌-직 대고, ‘사각사각’ 고구마 갉아 먹는 소리가 계속됐다.
양식 축내는 쥐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쥐잡이에 나섰다. 여닫이문 밖에서 쥐구멍에 자루를 대고 기다리면, 어머니는 고구마 통가리를 툭툭치고 흔들어 쥐들을 몰았다.
겁먹은 어린 쥐들은 꽁지가 빠지도록 들어왔던 구멍으로 달아났다. 아버지 자루를 알지 못하고 서둘러 도망친 쥐들은 함정에 빠졌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움켜쥔 자루를 탈출할 수 없어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어미 쥐는 달랐다. 통가리 속에서 없는 듯 꼼짝하지 않고 어머니와의 심리 싸움을 이어갔다. 견디는 자가 이긴다며 어머니를 속이려 들었다.
통가리를 흔들고, 나뭇가지로 쑤시며 겁을 줘도 버텼다. 심지어 살갗에 나뭇가지가 찔려도 참아냈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몇 차례 겁을 주다 어머니가 속아 중단할 것을 어미 쥐는 계산하고 있었다. 결국, 어머니가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여보! 쥐 없어요. 다 나갔나 봐요.”
포기하고 들어가면 쥐들은 다시 잔치를 벌였다.
실컷 배를 채운 녀석들은 천장 속으로 올라가 놀이판을 벌였다. 운동장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달려 다녔다. 응원이라도 하는지 여러 마리가 ‘찍-찍’ 목청을 돋웠다. 흥분한 몇 녀석은 천장에서 내려와 이불 위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빨 근질거리면 옷장에 들어가 옷을 갉아놓고, 이불에도 구멍을 냈다.
어릴 적 잠들면 얼굴 물어뜯기라도 할까 봐 무서워 이불 뒤집어쓰고 잠 못 이룬 날도 있었다.
녀석들은 어찌나 약삭빠르고 날쌘지 당할 재간이 없었다.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사람을 두고 ‘쥐새끼 같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장독 사이로 달아나니 독 깨질까 봐 돌을 던질 수도 없고, 찬장 위를 오르내려도 몽둥이를 내려칠 수도 없다. 약점을 잘 알아 찬장에 구멍을 내고 음식을 훔쳐 먹고. 문틀까지 갉아 방안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대범해진 녀석들은 대낮에도 무리 지어 부엌이고 방이고 휘젓고 다녔다.
화가 난 아버지는 논두렁 쥐구멍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고 뜨거운 물을 붓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저곳으로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놓은 쥐들을 당할 도리가 없었다.
꾀많은 녀석들도 식탐 욕심에는 무너졌다. 하룻밤에 수십 마리씩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죽은 쥐를 먹는 동네 개들이 문제였다. 언젠가는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먹어, 개 세 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일도 있었다.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는 몇 년째 기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나비였다. 어머니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녀석이었다. 따끈한 부뚜막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밤이면 이불속까지 파고들었다. 생선 국물에 비벼준 밥을 먹고 양지바른 곳에서 낮잠이나 즐기는 팔자 늘어진 고양이였다.
나비에게 통가리 드나드는 쥐를 잡으라고 했다.
그런데 나비는 쥐를 잡기는커녕 못 본 체 묵인까지 했다. 쥐들도 나비가 무능하다는 것을 아는지 겁내지 않고 옆으로 오가며 통가리를 들락거렸다. 아쉬울 것 없고, 배부른 녀석에게 쥐 잡기를 기대한 것이 무리였다.
이웃 동네에서 쥐 잘 잡기로 소문난 ‘샌돌이’를 데려왔다. 그 녀석은 눈빛부터 달랐다. 새끼 때부터 배를 곯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썩은 음식을 먹으며 자란 녀석이다. 부뚜막에서 몸을 녹여본 적도 없고, 사람에게 발로 차이고 쫓기며 살아왔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몸으로 익힌 녀석이었다. 주인 눈치를 살폈고, 무엇을 해야 발길질을 피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샌돌이는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통가리를 드나드는 왕초격인 크고 힘센 쥐를 잡았다. 보란 듯이 내장을 도륙 내고 살을 찢었다. 참혹한 광경에 다른 쥐들은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샌돌이 가 통가리 주변을 지키는 동안 쥐들은 얼씬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보상으로 생선 대가리를 주었다.
며칠 뒤 이웃집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관절 아픈데 고양이탕이 좋다며 고양이 한 마리를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쥐도 못 잡고 빈둥대는 나비를 데려가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샌돌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기라도 하려는 듯 더 열심히 쥐를 잡았다. 덕분에 샌돌이는 집안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따뜻한 부뚜막은 물론 안방까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창문에 구멍 내고 찬장 들락거리니 어머니 원성을 샀고, 벼 이삭 먹어치우는 것을 넘어 고구마 통가리를 넘보다 아버지 화를 불렀다. 나라에서 쥐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먹을 것을 치우고 한날한시에 전국에 쥐약을 놓았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에게 쥐꼬리를 잘라 학교로 가져오라는 과제를 주기까지 했다.
쥐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나선 건 살기 위한 본능이라 해도, 더 가지려 했던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른 일이 되었다.
어린 시절 통가리 속에서 들려오던 ‘찍-찍’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많던 쥐들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