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는 도둑질이 되었다.
“사과 서리 가자.”
산골 마을 청소년들이 밤에 모여 놀 때면 흔히 나오는 말이다. 주말 밤이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또래들이 사랑방으로 모여들었다. 거기에는 몰래 불러낸 여자애들도 서너 명 있다. 밤이 깊어 출출해지면 누군가 자연스레 서리 이야기를 꺼낸다. 서리에 관한 한 경험자들이다.
참외 서리, 사과 서리.
심지어 닭서리까지.
녀석들한테 서리는 놀이다. 범죄의식이나 양심 거리낌 같은 걸 느끼지 않고 장난 정도로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콩 서리를 여러 번 했었다. 하굣길 논두렁에 마른 풀잎 뜯어 불을 피우고. 잘 여문 콩 줄기 대여섯 개를 꺾어 줄기 채 굽는다. 노릇하게 익은 콩을 까먹은 것이 첫 콩서리였다. 서리를 할 때도 나름 금도가 있다. 밭을 훼손하거나 작물에 피해 입히지 말아야 한다. 양을 최소화해 주인이 도둑이 아닌 서리꾼 짓이란 걸 인정하는 정도여야 한다. 자기네 밭 참외를 따 온다는 정도여야 도둑 문제로 불거지지 않는다. 수차례 경험으로 터득한 불문율이다.
지금쯤이면 풋사과가 단맛 들기 시작할 때다. 고개 넘어 관창리 과수원을 목적지로 삼았다. 그곳은 사과나무 수백 그루가 있어 사과 몇십 개 딴다 해도 표시가 나지 않을 규모다. 문제는 과수원을 둘러친 탱자나무 울타리를 통과하는 일이다. 탱자나무는 단단하게 얽히고설켜 빈틈이 없고, 큰 가시가 날카로워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취약한 곳이 있다.
개구멍이다.
과수원 개들이 발정 난 암컷을 만나러 드나드는 구멍이 있다. 그곳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과수원 주변에 흩어져 서성거리면 민감한 개들이 도둑 쫓아내겠다고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온다. 개구멍을 서리꾼에게 알려주는 꼴이다. 그 개에게 뼈다귀를 던져 줘 믿게 해야 한다. 그러면 개구멍으로 같이 들어가도 꼬리를 살랑거린다.
사과나무 밑에서 한 녀석이 바지를 벗어 가랑이를 묶어 자루를 만들었다. 가지 휘어잡고 큰 것 위주로 빠르게 따서 자루에 담는다. 사랑방에 일곱 명 정도 있으니 스무 개 정도면 적당량이다. 자루를 목에 걸고 개구멍 기어 나오다 바지 벗은 녀석이 탱자나무 가시에 찔렸다. "으윽~" 아프다는 소리조차 내질 못하고 끙끙거릴 뿐이다. 서둘러 과수원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고갯마루에 앉아 들키지 않았다며 의기양양이다. 킬킬대며 훔친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아! 맛있다.”
훔친 사과가 매번 맛있는 건 아니다. 사과값을 톡톡히 치른 적도 있다. 어느 날 자기네 것처럼 드나들던 과수원에서 걸리고 말았다. 큼직한 사과 대여섯 개씩 메리야스 속에 넣고 개구멍을 기어 나오는 순간.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주인에게 멱살을 잡혔다.
“이 도둑놈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솥뚜껑 만한 싸대기가 얼굴을 덮쳤다. 몸뚱이는 나동그라지고, 훔친 사과는 사방으로 뒹굴었다. 주인은 아버지 이름을 대라며 윽박질렀다. 네놈들 아버지한테 사과값 변상받고, 도둑으로 파출소로 끌고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버지 이름은 끝까지 말하지 않은 채 개구멍 앞에서 세 녀석이 무릎 꿇고 빌기 시작했다. 누렁이 녀석도 주인옆에 쭈그리고 앉아 우릴 바라보고 있다. ‘오늘 처음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 사과값 대신 일을 해 드리겠습니다.’
“너, 이 씨네 아들이지? 일어나서 사과 주워.”
어둠 속에서 흩어진 사과를 찾는 사이 주인은 누렁이를 데리고 과수원 안으로 사라졌다. 양손에 사과를 든 채 고갯마루에 앉았다. 갈 땐 의기양양하게 넘었던 고갯길이 돌아올 땐 웃음이 사라졌다. 손에 든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돌아오는 내내 두려웠다. 아버지 귀에 들어갈까 두려웠고, 파출소에 끌려갈까 두려웠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우려였다. 과수원 주인은 서리꾼의 잘못은 꾸짖되 배고픔을 이해했다. 그의 손바닥은 매서웠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것은 분명 도둑질이었고, 처벌받을 범법 행위였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시절 사람들은 잘못을 미워했지 사람까지 미워하진 않았다. 아이들의 배고픔을 잘못 보다 먼저 생각했고, 회초리 뒤에는 용서가, 꾸중 뒤에는 반성할 기회를 주었다.
오늘의 세상은 법도 잘 만들어졌고 규칙도 촘촘해졌다. 그러나 실수는 너무 쉽게 낙인이 되고, 한 번의 잘못은 평생 기록으로 따라다닌다.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바카라임을 묻는 일이 먼저고, 용서보다 응징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다.
가끔 생각한다.
내 기억에 남아 있던 것은 훔친 사과의 단맛이 아니라, 도둑을 만들지 않으려 했던 과수원 주인의 넉넉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사과를 한 입 베어 물 때면 그날의 풋사과 단맛보다, 세상은 법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마음으로도 지켜진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사과가 예전보다 훨씬 달아졌는데도, 그때 훔쳐 먹었던 사과만큼 맛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