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茶房)

문학예술을 논하던 다방이 사라졌다.

by이광주


다방에 처음 가본 건 십 대 후반이었다.

대천역 앞 역전다방이었다. 껄렁대던 친구를 따라 들어간 다방은 어두침침했고, 의자 등받이가 높아 옆자리 손님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담이 반겼다.

“어머 젊은 오빠들 어서 와요.”


인생 풍파를 다 겪은 듯한 얼굴에 진한 화장이 덧칠돼 있었다. 수많은 이별과 만남이 오갔을 역전 풍경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오빠들 뭐 드릴까?”

친구 녀석은 익숙한 듯 주문했다.

“애는 커피, 나는 위스키 따블.”

주문이 끝나자마자 마담이 말했다.

“오빠, 나도 한 잔 사줘야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자기 가게 커피를 따라 마시면 될 텐데 왜 사달라는 걸까.


“오케이”


친구가 선뜻 대답하자 마담은 살랑살랑 여우꼬리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 뒤에 대고 친구가 외쳤다.

“가치담배도 하나 줘요.”


잠시 후 마담은 마티니 잔에 찰랑찰랑 담긴 도라지 위스키와 커피 두 잔을 쟁반에 담아왔다. 한쪽에는 청자 담배 한 개비와 ‘비사표’ 성냥갑도 놓여있었다.

처음 마셔본 커피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돈 주고 이런 걸 사서 마시다니.’


그 시절 내게 커피는 익모초즙만큼이나 쓴맛이었다.

마담이 친구 옆에 앉으려는 순간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 어이, 김 마담. 모닝커피. 마담 것도.”


우리가 사준 커피도 있는데 또 마신다고? 저 마담은 커피를 됫박으로 마시는 사람인가 싶었다.


마담은 달걀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를 들고 그 남자 옆에 안기듯 앉았다. 남자는 음흉한 눈빛으로 마담을 훑으며 말했다.

“이 양 어디 갔어?”


“어젯밤 티켓 나갔는데 육시랄 년 아직도 뭔 짓거리하는지 안 오네요.”

그때 알았다.

다방은 내가 생각했던 낭만의 공간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 다방은 문화예술이 숨 쉬던 공간이었다. 서울 소공동의 ‘낙랑파라(樂浪珈琲)’에서는 문인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고,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 다방’에서는 시인과 화가, 소설가들이 어울려 예술을 논했다.


내가 젊은 시절 드나들던 다방도 역전다방과는 달랐다. 칠십년대 초 서울에는 음악다방이 성업 중이었다. 명동의 다방에는 미국과 유럽의 팝 음반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DJ가 신청곡을 틀어주었다. 통기타 가수들이 노래하던 공간은 음악감상실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갔다.

종로의 쎄시봉 같은 곳에서는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김민기 같은 젊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하얀 손수건」을 듣고 「고래사냥」을 따라 부르며 청춘을 보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방은 도시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곳은 시골 읍내와 섬이었다. 40여 년 전 서해의 소청도와 백령도를 찾은 적이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열두 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먼 섬이었다.


소청도에는 다방이 단 한 곳 있었다.


나이 든 레지 한 명이 일하는 작은 다방이었다. 우리가 갔을 때 그녀는 목발 짚고 배달 다녀오는 길이었다. 며칠 전 밤 배달을 가다 발목을 삐었단다. 쉬면서 치료하라고 했더니 웃으며 말했다.

“여긴 그럴 수 없어요.”


주요 손님은 어부와 선원들이었다. 커피가 담긴 보온병과 잔을 보자기에 싸서 부두와 선착장으로 배달했다. 다방 수입의 대부분은 티켓 장사였다.

밤에는 술집으로 나가고, 아침에는 모닝커피를 배달했다. 몸이 아파 쉬게 되면 그 시간만큼 자기 돈으로 티켓을 끊어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목발 짚고도 배달을 나가야만 한다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젊고 예쁠 땐 서울이나 인천에서 일하고, 나이 들면 전방지역 군부대 주변을 거쳐 마지막에 섬으로 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따뜻한 커피 한잔이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백령도는 조금 달랐다.

군인과 관광객이 많아 다방도 여러 곳 있었다. 하지만 그곳 역시 다방의 마지막 불빛이 흔들리는 곳이었다. 새 레지가 들어오면 손님이 몰리고, 두세 달 지나면 또 다른 레지가 들어 왔다.

그 무렵 여인숙 주인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예전에는 티켓 손님들이 여인숙을 찾았는데 이제는 다방에서 개조한 봉고차를 티켓 손님에게 빌려주니 장사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섬의 다방도 그렇게 시대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지금은 그 섬들에서도 다방을 볼 수 없다. 카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달걀노른자 띄운 모닝커피 대신 얼음 넣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점령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수백 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그 시절 나는 돈 주고 커피를 사 마시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익모초즙 같은 걸 왜 돈 주고 마시느냐며 친구를 놀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생각해 보면 사라진 건 다방만이 아니다. 커피 맛도, 사람들도, 세상도 변했다. 그리고 그 변한 세상 속에서 나 또한 어느새 옛 다방을 추억하는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