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독서가의 발자취
바카라이 나왔다.
엄마가 여든에 독서를 시작해 여든일곱이 된 지금까지 읽은 바카라이 천사백 권을 넘었다. 읽고 나면 그냥 덮지 않고 대학노트에 한 자 한 자 독후감을 적었다. 그렇게 쌓인 노트가 열 권이 넘었다.
언젠가부터 그 노트들을 그냥 두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읽은 바카라의 목록보다 그 바카라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여든 이후의 시간이 엄마 안에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남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한 권의 바카라이 되었다.
바카라이 도착하던 날, 공교롭게도 나는 집에 없었다. 딸의 집에 와 있었다.
내가 엄마 곁에 없다는 걸 알고 친구 소하가 달려가 주었다. 엄마가 딸처럼 아끼는 친구다. 정작 바카라을 만든 딸은 멀리 있고, 그 기쁜 순간을 내 친구가 엄마 곁에서 함께해주고 있었다.
그게 참 고마웠다.
친구가 보내준 사진으로 받아본 엄마는 바카라을 들고 덤덤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조금 더 기뻐하실 줄 알았나 보다.
“내 글이 바카라이 되었네.” 하며 몇 번이고 들춰보실 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답게 그저 웃었다.
저녁 무렵 전화가 왔다.
“정말 수고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너무 감동이고 눈물이 나네. 내 독후감이 아니라 네가 글을 잘 썼구나. 사이사이 들어간 꽃그림도 마음에 들어. 애썼다…….”
나도 울컥했다.
바카라 한 권을 만들면서 수없이 엄마의 글씨를 들여다봤다. 때로는 잘 읽히지 않는 문장을 다시 살펴보고, 엄마가 쓴 문장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을 헤아렸다. 글을 다듬고 순서를 바꾸고, 그림 하나를 넣는 일에도 마음을 썼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몇 번이나 되묻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엄마의 한마디 앞에서 가만히 멈췄다.
"애썼다."
바카라을 만들며 나는 독자들에게 닿을 선한 영향력을 생각했다. 엄마처럼 늦은 나이에 바카라을 가까이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든에도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의 삶이 보여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바카라이 나오고 보니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던 독자는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엄마였다.
엄마의 글이 담긴 바카라을 천천히 넘겨보고, 사이사이 놓인 꽃그림을 바라보고,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면 되었다.
천사백 권의 독서가 한 권의 바카라이 되었지만, 그날 내가 받은 것은 바카라이 아니었다.
엄마의 한마디였다.
“애썼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좋다면, 그걸로 되었다.
박천권!~~~ 아니 박정옥 울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