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엄마와의 어린이날

달이 새겨진 호수에서 건져올린 깨진 화분

by순간수집가


엄마와 함께 강릉 인월사에 다녀왔다.
제53회 국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몇 해 전 화재로 전소된 사찰을
불연재로 새롭게 지어 올렸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저 궁금했다.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모던수채화 캘리 수업에서 만난 친구가
그곳의 신도라며
가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찰은 예상과 달랐다.
전통적인 색을 떠올리고 갔는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인드라망을 형상화한 색의 조합이었다.
벽면은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빛과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어딘가 낯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오래 눈을 붙잡았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쨍그랑.
청소기 전선에 걸린 화분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깨졌다.
그 소리는
잠깐의 현실처럼 지나갔고
우리는 다시 조용히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삼배를 드리고 나와
문득 그 깨진 화분이 마음에 남았다.
그대로 두고 나오기가 아쉬워
혹시 가져가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분갈이를 해서 다시 살려
가져다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시더니
이내 고맙다며 화분을 건네주셨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엄마가
“잘 생각했다.”
짧게 말하며 웃으셨다.
그 말이 괜히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명상실에 앉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이었다.

친구의 안내로 주방에 들러
식혜를 한 잔씩 마셨다.
작약식혜와 커피식혜.
이름도 낯설고 맛도 새로웠다.

엄마는 꽃 한 송이 앞에서도
작게 감탄하시고, 자주 웃으셨다.
그 모습이 좋아
나는 그저 함께 웃었다.

사찰을 나와
상상이상 독립서점에 들렀다.
엄마는 바카라 두 권을 골랐다.
『아침의 피아노』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주인장이 내어준 따뜻한 국화차를 마시며
한 시간쯤 조용히 바카라을 읽었다.
그 시간도 좋았다.
누군가의 공간에서
조용히 바카라을 펼치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휴식이 된다.

저녁에는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갔던
앞바다식당에 들렀다.
가자미조림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담담하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몇년 전 까지도
어린이날에 전화를 걸어서
"어린이날 축하한다" 하시던 아버지......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새로 지어진 사찰처럼
낯설고도 익숙한 시간들이 겹쳐 있었고,
타버린 자리 위에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세워진 공간처럼,
깨진 화분 하나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작은 마음까지 더해져
오늘은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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